TV를 말하다

초대받지 못한 자! ‘감자별’

朱雀 2013. 12. 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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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어제 감자별을 본 이들이라면 다들 입맛이 씁쓸하지 않았을 까 싶다. 엔딩 때문이다. 길선자는 왕유정이 자신의 딸들과 오페라를 가기로 한 것을, 자기까지 초대한 줄 알고 100년만에 한파가 몰려온 날, 밖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몇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말 그대로 초대받지 못한 자였다.

 
영상, 사진 제공: CJ E&M
 

이야기는 이렇다! 길선자는 왕유정과 두 번 우연히 함께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혼자 차를 마시기 그랬던 왕유정이 호의(?)로 두 번 차를 마신 것이었다. 왕유정은 차를 마시면서 고민을 이야기하고, 길선자의 개인기에 배꼽빠지게 웃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길선자는 심한 착각에 빠진다. 바로 자신을 고용한 집의 사모님과 자신이 친구가 되었다고. 물론 그녀의 착각엔 어느 정도 이유가 있다. 일단 길선자의 남편과 노수동은 원래 동업자였다.

 

만약 길선자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왕유정 만큼은 아니더라도 길선자 역시 떵떵거리면서 꽤 잘 살았을 것이다. 게다가 왕유정 역시 시골 여상출신 여성으로 시아버지인 노송이 결혼때 엄청나게 반대했었다.

 

따라서 근본(?)을 따지자면 길선자와 왕유정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사정을 다 아는 길선자로선 몇 가지 운이 안따라줘서 그렇지, 자신과 왕유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번 차를 마시고 나서 길선자는 왕유정이 불쌍한 사람이라고 입에 담는다. 그러나 실상은 딸인 나진아가 말한 것처럼, 왕유정은 재벌가의 사모님이고, 길선자와 나진아는 그 집 차고에서 지내는 신세에 불과하다.

 

방도 아니고 차고에서 지내는 두 사람의 처량한 신세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게다가 두 사람이 방이 아니라 차고에서 지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순전히 왕유정 때문이다.

 

현재 노수동네 집에서 (오갈데 없는) 길선자와 나진아가 집에서 사는 걸 반대하는 이는 오직 왕유정 뿐이다. 그녀는 처음엔 아들 노민혁이 사고 이후 변한 사실을 알리기 싫어서 였고, 지금은 순전히 다른 집 식구들을 집안에 들이기 싫어서다.

 

따라서 길선자에게 왕유정은 미워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런데 길선자는 왕유정과 몇 번 차를 마셨다고 자신과 그녀가 동등한 입장(친구)이라고 착각하고, 왕유정이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데 끼어들고, 심지어 두 딸과 오페라를 볼 약속을 잡는데 자신도 초대했다고 착각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녀의 그런 착각은 혼자서 몇 시간이나 오페라 극장앞에서 기다리면서 깨지지만 말이다. 길선자의 이야기는 나진아와 여진구가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것과 철저하게 비교가 된다.

 

41화에서 여진구는 창고정리를 하다가 나진아가 선물로 준 팔찌를 잃어버리고, 그걸 찾기 위해 고생하는 에피소드가 함께 방송되었다. 조그만 팔찌를 잃어버리고 어쩔 줄 몰라하는 여진구의 모습과 오페라 극장앞에서 덜덜 떠는 길선자의 모습은 너무나 비교되면서 새삼 <감자별>을 곰씹어 보게 만들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분명히 정해진 신분계급이 없다. 그러나 <무한도전>에서 얼마전에 그려진 것처럼, 노홍철이 길가던 회사원을 붙잡고 조선시대로 따지면 신분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노비요라고 대담했던 것처럼 다른 방식으로 계급이 정해져 있다.

 

그렇다! 바로 돈이다! 많은 이들이 <무한도전>에서 그 대목을 보면서 씁쓸해지만 동시에 많이 수긍했던 것으로 안다. 현재 노수동네 차고에서 생활하고 있는 길선자와 나진아의 모습은 정말이지 시트콤이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차고는 차가 들어가는 곳이지 사람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수동네 집은 길선자와 나진아가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유정은 객식구를 들이기 싫다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요즘처럼 추운 겨울날에 두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 사는 것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이런 왕유정의 모습은 왠지 2013년 현재 국민소득이 24천불이 넘어가지만, 국민 대다수가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현실과 맞물리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분명히 대한민국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고, 국민소득은 2만 4천불이 넘어가는 준선진국인데, 국민의 90% 이상이 힘겹게 살아가는 현실은 길선자처럼 '초대받지 못한 자'는 아닌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영상, 사진 제공: CJ E&M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돈이 없는 것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부끄러운 수준에 이르렀다
. 2012년 실업급여 수급자가 약 108만명이고 그중 16만명이 20대였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 실업자는 약 30만명을 넘어가며,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들까지 합한다면 최대 약 100만명까지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만약 우리 사회를 책임지는 정치인들이 노력했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충분히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수준이며, 북유럽국가들은 국민소득이 1만불 때부터 복지에 힘써와서 오늘날의 멋진 복지국가를 이루어냈다.

 

<감자별> 41화는 작게는 경제력으로 인해 엄청난 신분차이가 나는 왕유정과 길선자의 차이를 시트콤으로 승화함과 동시에, 경제력이 곧 신분이 된 우리사회를 풍자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현재 상황을 잊고 쉽게 자신을 재벌과 동일시 하는 우리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 우리나라 드라마에선 흔히 재벌 2세와 가난한 여성의 로맨스를 잘 그려낸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 재벌 2세와 가난한 여성은 만날 일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드라마를 보면서 힘들고 어려운 현재 상황을 잊고, 말도 안되는 드라마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 <감자별>은 역으로 왕유정과 길선자의 처지를 풍자해서보여줌으로서 그런 대리만족을 깨부셨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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