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혼’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朱雀 2009. 9. 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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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부터 말하겠다. 무수한 질문을 남겼다.

<혼>은 이전까지 TV에서 방영되었던 공포물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초반에 혼은 프로파일러 신류(이서진)와 빙의능력을 지닌 신비로운 소녀 윤하나(임주은)을 등장시켜 기존에 봐왔던 공포물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 같았다.

특히 학교에서 죽은 여학생을 교실에서 보고, 그녀의 사연을 보고 듣는 그녀의 능력은 그런 의심을 부추켰다. 또한 거울에 죽은 여학생의 환영이 보이고, 끔찍한 귀신들의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을 깜짝 깜짝 놀래키는 <혼>은 현대판 공포물의 익숙한 전형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되면 될수록 우린 전혀 다른 드라마를 만나게 되었다. 여기엔 ‘공포’가 없었다. ‘슬픔’만이 있을 뿐이었다. <혼>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는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모두 있었던 사건들을 기초로 지어졌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다가 죽은 아이들. 다른 아이의 약점을 이용하다가 말을 듣지 않자 결국 강간을 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협박하는 아이들.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 자신의 쾌감을 위해 선량한 시민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인간들. 너무나 강한 권력을 갖고 있어서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해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이들. ‘인권’을 들먹이며 죽어 마땅한 살인범들이 교도소에서 일정 형을 살고 다시 사회로 나와 활개치는 세상.

<혼>은 ‘픽션’이란 이름 하에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인다. 우리가 <혼>을 보며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이전의 공포물처럼 음향효과를 사용하고 끔찍한 모습의 귀신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다. 거기엔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끔찍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기 때문에 우린 공포를 느끼는 거다.

실제 <혼>은 초반에는 정교한 CG를 이용해 익숙한 공포 효과를 사용한다. 그러나 몇화 지나면 그런 특수효과는 사라지고 그저 단순한 분장술로 귀신과 산사람을 구분해버린다.

그러나 억울한 그들이 사연과 피맺힌 원한은 너무나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우린 하나가 빙의되어 죽어 마땅한 이들을 단죄할 때 오히려 쾌감을 느낀다. 주인공 신류가 17살 때 여동생을 찔러죽이고 어머니를 자살하게끔 만든 3인방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그녀의 모습에 끔찍하지만 응원하고, 모든 계획을 꾸며 완전범죄를 처리해가는 신류에게 심정적으론 환호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혼>은 단순하지 않다. <혼>은 마지막에 묻는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혼>에서 절대악은 ‘백도식’으로 대표된다. 그는 무패를 자랑하는 변호사로 법을 이용해 자신과 같은 악인들을 재판에서 이기게 하고, 사회에서 떳떳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신류와 하나는 힘을 합쳐 그를 결국 파멸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고, 그건 신류 역시 마찬가지다.

피를 손에 묻히기 싫어 하나를 이용하던 신류는 그녀의 기억을 봉인하곤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다. 바로 ‘심판자’로 죽어 마땅한 이들을 죽이고 다닌 것이다.

신류는 처음엔 범죄자와 일반인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면 ‘악과 선’은 정말 약간의 차이라는 다소 상반된 이야기를 한다. 모순이다. 그러나 신류의 존재 자체가 모순이다. 그의 최초 원인은 자신의 가족을 파멸시킨 3인방이었다. 그러나 그 3인방에 대한 지나친 분노는 결국 모든 범죄자를 향하게 되었고, 그들을 법으로 심판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여의치 않자 하나를 이용하고 결국엔 스스로 칼을 들어 그들을 심판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그는 그토록 경멸해마지 않던 백도식 같은 악마가 되었다. 괴물이 되었다.

신류에겐 악인을 징벌하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다. 우린 그걸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귀가한 여동생은 칼에 찔려 차가운 시체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들 문을 걸어 잠그고 모른 척 했다.

한때 신부가 되고자 했던 소년은 결국 누구도 용서하지 못하고 프로파일러가 되었고, 법이 악인을 심판하지 않자 스스로 심판자로 나서고 만다. 그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우린 과연 그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배트맨>이 떠오른다. 배트맨은 악인과 싸운다. 그들을 증오해마지 않지만, 결코 죽이지는 않는다. 그가 ‘괴물’이 되지 않고 그나마 영웅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살인’을 결모 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만약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질렀다면 결국 배트맨도 악에 물들어 결국 똑같은 악당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신류가 저지른 유일한 잘못은 악을 심판하기 위해 결국 죽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상황에서 힘이 있다면 악인을 죽이지 않을 것인가? 물론 그 한사람이 죽어서 세상이 평화로워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그 살인마에게 당하는 희생자는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살인마를 죽이지 않고 냅둠으로써 무수히 늘어가는 희생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윤하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빙의능력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살인을 저질렀고, 끝내는 소중한 사람들을 모조리 잃어버렸다. 여동생 두나는 비참하게 불에 타 죽었고, 엄마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유체이탈을 했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그녀를 도와주던 여의사 이혜원은 백도식의 손에서 하나를 구하려고 하다가 대신 총에 맞아 죽었다. 그녀를 늘 곁에서 지켜주던 시우는 신류를 구하려다 백도식에 총에 죽었다. 신류는 백도식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역습을 당하고 죽고 만다. 결국 하나를 빼고 모두 죽는다. 하나의 칼을 피해 건물에서 뛰어내린 백도식은 마지막 장면에선 사라진 것으로 처리해 아직 살아있음을 암시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찝찝한 결말이다. 그러나 드라마 <혼>은 계속해서 묻고 있다.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이냐고? 만약 자신이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했겠는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사회의 모순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당신에게 힘이 있다면, 능력이 있다면 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10부작 <혼>은 끝났지만 드라마가 시청자를 향해 묻는 질문은 무수히 많고 그것들 하나하나는 대답하기 매우 곤란한 질문이다. 그렇게 ‘공포’가 아닌 ‘죽도록 무서운 진실’을 보여준 드라마 <혼>은 우리 곁을 떠났다. 무수히 많은 질문만을 남겨놓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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