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전혜빈의 재발견, 전설의 고향 구미호편

朱雀 2009. 9. 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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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에 하나가 바로 ‘구미호’편이다. 인간이 되고자 한 구미호와 그녀를 배신하는 인간 남자의 이야기는 오래오래 회고될만한 이야기다.

특히 이번 <전설의 고향> 구미호편은 너무나 그냥 묻히기에 아까운 것 같아 몇자 적어보려 한다. 구미호편은 시작부터 구미호가 사냥꾼에게 쫓기면서 시작한다. 사냥꾼들에게 쫓겨 위기에 빠진 그 순간, 다른 구미호들이 달려와 도와준다. 알고 보니 아빠, 엄마 그리고 딸(?)로 이루어진 구미호 가족은 그들을 노리는 사냥꾼 때문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었다.

아빠 구미호는 아내와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던진다. 인간 사냥꾼을 몇 명 죽이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사로잡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후, 그 몸은 인간에게 팔려간다. 손톱은 뽑히고, 꼬리는 잘리고, 몸통을 불태워 ‘여우구슬’을 추출하는(?) 실로 잔인한 과정을 거쳐서.

한편 땅을 파던 순박한 농사꾼 연돌(안재모)는 어느날 사냥개에 쫓겨온 소호(전혜빈)을 도와주고, 갈곳 없다는 그녀를 맞아들여 아내로 삼게 된다. 그날 밤 소호는 늦은 시각 어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놀랍게도 그녀를 인간에게 보낸 것은 더 이상 도망칠 길이 막막해진 어미가 궁여지책으로 딸이라도 살리기 위해 인간이 되도록 한 것이다.

이 지점이 기존의 구미호편과 다른 데, 여태까지의 경우 대부분 그냥 인간을 동경해서 무작정 인간이 되려하는데, 이번 2009 ‘구미호’편에선 생존이란 절박한 이유로 ‘인간이 되는 길’을 택한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시집와서 인간에게 별다른 정을 느끼지 못하던 소호는 연돌이 자신의 노리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곤장까지 맞는 고초를 겪는 걸 보면서 서서히 마음을 연다. 100일간 함께 지내면서 연돌의 믿게 된 소호는 자신의 소금동굴을 알려줘 부자가 될 수 있게 해주고, 더불어 곰보인 얼굴로 낫게 해준다.

그러나 한결 같을 것 같던 인간의 마음은 재물이 생기자 변한다. 연돌은 부자가 되자 기생질과 투전으로 전재산을 날린다. 그것도 부족해 기생에게 자신의 동굴을 알려줬다가, 기생이 거상에게 비밀을 팔아치우는 바람에 밑천마저 털리게 된다.

 

다시 가난뱅이로 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연돌은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신의 아내가 ‘구미호’란 사실을 깨닫게 되고 사냥꾼에게 밀고해 한 밑천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구미호의 역습에 사냥꾼 일행은 모조리 도륙당하고 연돌은 오히려 위기에 처한다. 소호는 한때나마 사랑했던 연돌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활을 내어주며 자신을 죽이라고 한다. 잠시 망설이던 연돌은 소호를 죽이기 위해 활을 들고 쏘다가, 결국 자신들을 찾아온 여동생을 죽이게 된다. 죄책감과 소호의 분노를 피해 도망치던 연돌은 결국 절벽에 떨어져 죽게 된다.

‘구미호’편을 보는 내내 인간의 욕심이 눈에 밟힌다. 사람들이 구미호를 사냥하는 이유는 그들이 해를 끼쳤거나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에게 재물운을 가져다 준다는 여우구슬을 얻기 위해서다.

또한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탐욕스럽기 짝이 없다. 거상인 이효정은 갖가지 핑계를 대서 어리석은 연돌의 등을 쳐먹고, 사또는 갖은 세금을 백성에게 징수해 재물을 얻을 궁리에만 몰입한다. 오히려 구미호인 소호가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녀는 재물욕에 눈먼 사또를 놀래켜 혼자 움직이다가 실수로 칼위에 넘어져 죽게 만든다. 연돌을 꾀어 재물을 빼돌린 기생의 얼굴을 망치고, 그 기생이 거상과 손잡고 소금동굴을 캐내려하자, 무너지게 해서 천벌을 당하게 한다.

‘구미호’편을 보면 이전과 달리 CG를 전혀 사용치 않았다. 놀래키는 효과도 없다. 오직 배우들의 연기와 약간의 분장으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그 내용은 슬프기 짝이 없다.

탐욕스런 인간은 동족을 죽이거나 핍박하는 걸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재물을 모으기에 급급하다. 반면 비록 짐승이지만 구미호들은 끈끈한 정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전혜빈이 분한 소호는 보는 내내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아빠와 엄마가 사냥꾼에게 잔인하게 잡혀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여우독에 맞아 얼굴이 흉하게 되자 서방마저 자신을 버리고 핍박하는 고통을 감수해야했다. 결국엔 남편이 자신을 사냥꾼에게 팔아버리는 패륜적인 경험마저 했다. 그것도 부족해 자신을 유일하게 끝까지 아껴주던 연아가 죽는 모습마저 지켜봐야 했다. 정말 마지막엔 남편이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 모습을 보며 쓸쓸히 혼자 남아야 했다.

‘구미호’편은 오로지 전혜빈을 위한 단편극이었다. 전혜빈은 여기에서 인간을 향한 끝없는 증오와 살의를 느끼고, 또한 순박한 남편에게 애정을 느끼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너무나 잘 그려냈다. 전혜빈은 연기력 하나로 다면적인 캐릭터를 너무나 실감나게 소화한다. 순박하면서 예쁜 색시와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구미호를 동시에 연기해낸다. 그녀의 눈빛과 목소리엔 정말 절절한 감정이 실려 있어서, 전설에 불과한 이야기가 '참말'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한때 ‘이사돈’으로 불리며 예능계에서 활약하던 그녀는 없었다. ‘구미호’편엔 정말 한 마리 구미호로 분한 ‘배우 전혜빈’만이 있었다.

기존의 공포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배우를 분장으로 ‘구미호’화시킨 제작진의 선택은 탁월했다고 여겨진다. 덕분에 인간의 욕심이 그 어떤 요괴나 귀신보다 더욱 무섭다는 교훈이 뼛속까지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전혜빈의 재발견’이란 단어가 전혀 부끄럽지 않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또한 이효정, 이미지, 정소녀, 안재모 등의 화려한 배역진의 수준급 연기를 즐길 수 있는 훌륭한 판타지물이었다. 비록 6% 시청율 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배우 전혜빈의 멋진 연기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작품이었다. -모두가 내용을 아는 드라마나 자칫 유치하거나 흥미를 잃기 쉬웠을 텐데, 배우들의 호연으로 상당히 볼만했다. 다시한번 등장 배우들의 호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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