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10주년 맞은 ‘개그콘서트’의 의미와 한계

朱雀 2009. 9. 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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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개콘에 10주년을 맞이해 추억의 코너와 인물들이 대거 찾았다. ‘나가있어’로 유명한 세바스찬 주니어 3세 임혁필, ‘무를 주세요’를 외치던 갈갈이 박준형, 옥동자의 사전적의미를 바꿔버린 정종철, ‘빰바야’를 외치던 심현섭, 지금은 <무한도전>에서 활약중인 정형돈 그리고 수다맨 강성범까지. 일일이 나열하기가 어려울 정도 <개그콘서트>를 통해 많은 개그맨이 스타가 되었고, 지금도 박지선, 왕비호, 정경미 등 신세대 스타들을 배출해내고 있다.

1999년 시작된 <개그콘서트>는 이전의 개그 프로그램들과 혁신적으로 달랐다.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과 궤를 달리하는 ‘개콘’은 기본적으로 ‘즉흥성’을 기본으로 한다. 개콘의 코너들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거기엔 기승전결이란 이야기구조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그저 개그맨들의 특정 단어와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볼까? 예전에 이수근이 하던 ‘고음불가’를 떠올려보자. 거기엔 무슨 이야기구조가 있는가? 그저 특정 노래를 부르다가 높은 음역에서 낮게 불러 웃음을 불러 일으켰다.

이건 노래방 문화가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에서 높은 음을 부르다 소위 삑사리를 내거나, 아예 낮게 부르는 우리의 모습을 희화화했다. 예전 같으면 ‘고음불가’는 한 개의 코너로서 성립할 수 없을 것이고, 지금처럼 인기를 끌수도 없을 것이다.

개콘은 철저하게 스탠딩 코미디를 지향한다. 관객과 개그맨의 사이를 최대한 가깝게 밀착시킨 탓에 반응은 즉각적이다. ‘분장실 강선생’을 보자. 방영하자마자 화제작으로 검색어순위 탑에 올랐고, 2-3주만에 온국민이 알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개콘’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개콘’은 신인과 기존 개그맨의 나눔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기존의 유명한 개그맨이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통편집되는 수모를 겪고 신인이라도 넘치는 끼와 재능을 보여주면 바로 스타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개그의 무한경쟁을 불러일으킨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개콘은 대한민국 코미디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야기구조를 가진 기존 개그프로그램에 식상해있던 시청자들은 개콘에 열광적인 지지를 쏟아냈고 결국 MBC와 SBS도 각기 <개그야>와 <웃찾사>등을 선보이며 따라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현재 <개콘>을 제외한 다른 두 프로그램은 거의 존재마저 희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왜 그럴까?

<개콘>의 스탠딩 코미디는 ‘즉각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새 프로그램이라도 현 젊은 세대의 코드를 잘 읽고 만들어낸 코너는 방영 첫주부터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다. 그러나 빠른 반응만큼 식상해지는 시간도 무척 짧아졌다.

예전엔 한 프로그램의 수명이 적어도 1년 정도는 보장되었다. 그러나 <개콘>에선 불과 6개월을 넘기기도 어려워졌다. 즉각성은 바로 이슈화시키지만, 인터넷을 통해 무한재생되고 무한소비되면서 불과 3개월이 되기전에 식상하게 만들어버린다. 덕분에 개그맨들은 더욱 아이디어를 짜내고 신인급 개그맨들이 발굴되는 계기도 되었지만, 개그맨의 피로도를 높혀 버렸다.

‘신선함’을 추구한 개콘에 ‘봉숭아학당’이란 코너가 있단 자체가 이미 넌센스다. ‘봉숭아학당’이 도대체 언제적 프로인가? 1980년대에 등장한 코너이니 벌써 30년이나 되어버렸다.

‘봉숭아학당’을 폐지할 수 없는 이유는 더 이상 나올 아이디어가 고갈된 탓이다. ‘봉숭아학당’은 여러명의 개그맨들이 출연해 짤막짤막한 개인기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진 개그맨이 있다면 포맷을 바꿀 필요없이 교체투입하는 것으로 신선함을 얻을 수 있다. 즉 아이디어 기근에 시달리는 ‘개콘’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개콘의 피로는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황현희PD의 소비자고발’와 ‘달인’은 이미 웃음을 잃어버린지 오래지만 계속 방영중이다. 왜냐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여성 개그맨끼리 하는 코너가 거의 전무했던 실정에서 튀어나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지만 이젠 진부한 코너로 전락하고 말았다.

‘개콘’은 또한 개그프로그램의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한때 <웃찾사>와 <개그야>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나와 인기를 나눠 갖은 적도 있으나, 결국 무한소비되는 개그계 풍토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개콘>은 이미 개그를 독점해버렸다. 갈갈이 삼형제란 걸출한 개그맨들이 MBC로 이적했지만, <개그야>의 시청율은 요지부동이다. 오랜만에 <개콘>에 출연한 그들이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소재화시킬 정도로 참혹하다.

그럼 <개그야>는 정말 재미가 없나? 아니다. 그럭저럭 볼만하다. 어떤 코너는 꽤 웃긴다. 그러나 <개콘>에 익숙해진 우리에겐 다른 프로그램은 별다른 감흥을 주질 못한다. 적어도 <분장실 강선생님>처럼 ‘센’ 코너가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선보이지 않는 한, 이전과 같은 영광의 재현은 불가능하다.

정리해보겠다. ‘개콘’은 이야기 형식에서 즉흥성과 몇 가지 코드로 관객을 웃긴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줄인 스탠딩 코미디 방식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바로 시청자의 반응으로 이어졌다. 인터넷 덕분에 한번 뜨면 바로 엄청난 소비가 일으킨다. 덕분에 신인이라도 현세태를 잘만 읽고 코너를 짜면 금방 스타로 급부상할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개그맨들이 ‘개콘’을 통해 배출되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개그맨의 수명을 엄청나게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정형돈과 이수근은 이제 ‘못웃기는 개그맨’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물론 컨셉이긴 하지만 이는 엄청난 개그 소비문화를 일으킨 ‘개콘’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버렸다.

또한 스탠딩 코미디는 이야기 중심의 극구조에 익숙한 기존 코미디언들의 방송출연기회자체를 빼앗가버렸다. 오늘날 코미디는 ‘개콘’처럼 스탠딩 코미디거나, 토크쇼의 형식을 차용한 예능 프로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런 방식에 적응하는 극소수의 개그맨들만이 인기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10주년을 맞이한 개콘은 분명 개그의 패러다임을 바꿔놨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깊다. 그러나 무한소비하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무서운 폭식증을 그대로 재현해 개그맨들의 수명을 엄청나게 갉아먹는 폐해를 낳았다. 또한 신인 개그맨들이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연기하는 무한 소비 패턴은 다른 방송사의 경쟁자체를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했다. 따라서 ‘스탠딩 코미디’는 오직 개콘을 통해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콘’은 그 자체로 오늘날 사회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방송 권력이 되어버렸다. 독점적 권력은 모두 절대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엄청난 피로도에 휩싸인 개콘의 코너들이 어떻게 재정비 되고 신인 코미디들을 기용하느냐?에 따라 개콘의 수명은 연장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파놓은 무한소비의 패턴에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나마 하나 남아있는 개그 프로그램마저 소비자에게 외면당하는 최악의 날이 올지 모른다. 과연 개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한국 코미디의 운명은? 나로선 도저히 그 끝이 짐작되지 않는다. 그저 지켜볼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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