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나이 80살의 16살 소년과 17살에 아이를 낳은 부모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뻔한 신파극이겠구나’ 생각했다. 최루성이 가득한. 게다가 설정을 보니 조로증에 걸린 16살 소년은 누구보다 어른스럽고, 34살의 부모는 ‘철없다’라는 대목을 봤을 때 ‘너무 뻔하잖아’라고 읊조렸다.
-영화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했음을 미리 밝히는 바입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접하고 나선 얼마나 선입견과 편견을 가졌는지 반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조로증에 걸린 16살 소년은 죽음을 목전에 둔 탓일까? 너무나 어른스럽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병 때문에 해보지 못한 게 많은 소년일 뿐이다.
학교도 가지 못했고, 또래친구를 사귀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건강한 몸으로 뛰어다니면서 놀지 못했다. 대신 고혈압 약을 비롯한 80세 노인들이 달고 다니는 약을 수시로 챙겨먹고, 혈압을 비롯한 자신의 몸상태를 수시로 세심하게 체크해야 되는 고달픈 인생이었다.
17살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대수(강동원)과 미라(송혜교)는 한번도 자신의 삶을 원망하거나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뭔가 잘못한 탓에 아름이가 '조로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자책하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관객들 개개인에게 '자신의 부모'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런 인생을 향해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나라면 내 인생을 저주하고, 날 낳아준 부모님을 원망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름이는 그러는 대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자 애쓴다. 무엇보다 자신을 낳은 부모님이 처음 만나는 대목부터 시작해서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은 그리 길지 않은 인생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부분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선 당연히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둔 소년이 느끼는 감정에 어느 정도 초점을 맞춘다. 자신이 본 풍경과 경험들을 모두 소중하게 여기는 아름이의 모습은 소중한 하루하루를 너무 의미없게 보낸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단순한 최루성 영화가 아니다! 작품은 청춘과 노년을 대비시키고, 부모와 자식을 상반된 입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장치들은 단순히 ‘대결’양상을 취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다가가는 모습으로 승화시킨다.
17살에 어린 남녀는 아름이를 갖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두 사람이 부모에게 혼쭐이 나는 장면은 우습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게끔 한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하고.
아마도 대수가 슬쩍 말한 것처럼 낙태를 하지 않았을까? 아직 스스로도 어린 아이 같은 상황에서 아기를 키우는 것은 상상조차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누구보다 씩씩하고 어른스러운 미라 때문에 두 사람은 결국 부모가 되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당연히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으리라. 영화에선 두 사람이 고생한 모습이 제대로 그려지진 않는다. 그저 살짝살짝 그려질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17살이란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이 고생했을지 충분히 느껴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선하기 그지 없다. 그들은 모두 아름이에게 잘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말이 안돼'라는 생각보다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아울러 두 사람이 부모가 되면서 희생했을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단순히 17살의 어린 두 청춘이 부모가 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부모라면 자식을 위해 희생했을 것이란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하여 작품은 멀어진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 부분은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매우 인상깊은 장면이다. 이전까지 대다수 신파극들은 죽음을 목적에 둔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주변인물간의 갈등을 그리는 수준에서 못 벗어났다.
그러나 영화는 부모보다 자식이 더욱 신체나이가 높은 탓에 ‘역전된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게끔 만든다. 물론 <두근두근 내 인생>은 신파다. 그리고 여기서 다루는 이야기 역시 ‘조로증’이란 소재를 다루긴 했지만, 다소 진부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이 말하는 메시지와 방식은 결코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영화를 보면서 우린 단순히 ‘아름이가 불쌍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 부모님이 날 어떻게 키우셨을까?’ 등등을 생각게 한다.
작품의 놀라운 장점은 단순히 죽음을 목전에 둔 조로증 환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식과 부모간의 이해와 용서 그리고 화해를 담았다는 사실이다. 조로증 환자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17살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두 사람의 이야기까지 그려냄으로서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부모'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아마도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많은 관객들은 부모님께 전화를 걸게 되지 않을까 싶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선하다. 34살의 어린 부모인 미라와 대수는 오로지 아름이만을 생각한다. 한번도 힘들어하거나 아름이에게 짜증낼 줄 모른다. 옆집 할아버지인 장씨(백일섭) 역시 친구가 없는 아름이에게 누구보다도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주치의 역시 겉으론 무뚝뚝하지만 너무나 상냥하고 살뜰하게 아름이를 살핀다. 물론 <두근두근 내 인생>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선하고 착한 인물은 아니다. 방송국은 아름이의 사정을 이용해서 시청률을 올리려 하고, 아름이의 사연을 알게 된 이들 가운덴 악플을 달거나 길거리에서 그를 알아보고 꺼리거나 놀리는 이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그러나 작품에서 중요한 이(?)들은 모두 선의를 가지고 아름이를 대한다. 그리고 그들의 선한 의지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라는 말대신, ‘그래. 세상에 어쩌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34살의 철없는 부모역의 강동원과 송혜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꽃할배’로 친숙해진 백일섭 역시 훌륭하며, 이성민과 김갑수의 연기는 더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원작소설을 훌륭하게 스크린으로 옮긴 <두근두근 내 인생>은 9월 극장가에 ‘폭풍의 핵’으로 등장할 것 같다. 훌륭한 원작,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 과하지 않은 연출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내고, 영화적 재미와 감동이 적절하게 배합된 작품의 완성도는 극장가로 관객을 불러모으는 위력을 발휘할 듯 싶다. 9월 3일 개봉.
한줄평: 이것은 단순한 신파극이 아니다!
별점: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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