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그대 웃어요’를 보다 불쾌해진 이유

朱雀 2009. 10. 1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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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웃어요>의 지난주 방영분에 보면 드디어 미국에 있던 성준이 등장한다. 이천희가 분한 서성준은 아버지 서정길을 그대로 빼다박은 인물이다. 허풍세고 있는 척하기 좋아하는. 처음에 “돈을 아껴쓰자!”고 외친 성준은 알고보니, 라스베가스에서 미국에서 자신의 명의로 되어있던 모든 재산을 날려버렸다.

정인이 한세에게 파혼을 당한 사실을 알고 꼭지가 돈 그가 한세와 싸우면서 변호사를 통해 모든 사실이 드러났다. 정길과 주희가 슬퍼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사이 강기사 할아버지는 쓰디쓴 입맛을 감추지 못한다.

속상한 마음에 자신의 집을 찾은 정인은 현수에게 묘한 느낌을 받고, 마침 누군가가 집에 들어와 살며시 빠져나온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놀랍게도 거긴 강만복(최불암)이 앉아있다.

“돌아가신 회장님 유언을 따르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한 강만복의 대사를 통해 몇 가지를 추리해볼 수 있었다. 아마 돌아간 회장은 강기사에게 일정 이상의 재산을 따로 물려줬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재산은 훗날 정신 차리지 못한 자신의 아들이 모든 걸 날렸을 때, 재기할 수 있도록 밑천으로 제공하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또한 “정길이, 사람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라는 강만복의 대사에서, 그 밑천과 집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혹독한 수련(?) 끝에 내주겠다는 사실도 추리해볼 수 있다.

지난 6회동안 서정길과 그 식구들이 보여준 행동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길은 부도를 맞기 일보직전의 상황에서도 허세만 부리고 회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 오히려 가지고 있던 재산을 정리해 몰래 해외도피할 궁리만 짜고, 강만복에게서 어떻게든 도움을 받아 당장의 위기만 넘길 궁리만 한다. 그의 아내와 자식들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허례허식이 몸에 베어있다.

그러나, 최불암이 분한 강만복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대표격인 사내다. 그의 아내가 나오지 않지만, 만약 있다면 현수 어머니 백금자 못지 않게 절절 기었을 것이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자신의 손으로 결재하고 군대식 문화로 식구를 다스리는 강만복식 스타일은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된다”는 우리 사회의 속설을 생각나게 한다. 아마 강만복은 서정길과 그 식구들을 자신의 군대식 스타일로 사람 만들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과연 군대식 스타일이 사람을 만드는 좋은 방법일까? 군대는 상명하복을 목숨처럼 여기는 집단이다. 거기엔 효율성이나 인간성 등의 이야기는 씨도 먹히지 않는다.

강만복은 어떤 의미에선 ‘집안의 폭군’이다. 미국유학까지 다녀온 현수에게 방한칸을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고, 빼라고 난리치는 그의 모습에선 그 어떤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수 없다. 또한 집안의 모든 경제권을 가진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심지어 시장볼 돈 몇천원마저 직접 챙겨서 주는 그의 모습에선 꼼꼼함을 넘어서 가혹하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다.

현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벌서 50살이 넘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70대인 강만복의 말에 철저히 따르고 자신의 의견을 별로 개진할 틈이 없다. 강만복식 군대 스타일은 식탁에서 잘 나타난다. 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아 먹는 것에서 ‘군사 문화’가 징그러울 정도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생각해보라! 우리나라에 군대식 문화가 사회 곳곳에 퍼진 가장 큰 이유는 5.16 쿠테타까지 올라간다. 예비군과 민방위 등이 생겨난 이유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정통성이 없던 정부가 국민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정신적 개조와 동원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였다.

군대를 갔다온 남성들은 모두 인정하겠지만, 6주간의 기본 훈련은 남자라면 받아볼 만 하지만 2년의 내무반 생활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생활이다. 2년간의 군복무기간동안 우리가 배우는 것은 ‘굴종’이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고참의 비위를 거슬리면 기합을 받거나 위에서부터 깨져서 자기한테까지 어떤 식으로든 ‘보복’이 따른다.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바보로 만들고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게 만든다.

이병때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고, 고참의 말이 없으면 밥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다. 화장실도 말하고 가야만 한다. 그런 기초훈련을 통해 사회의 인격체였던 한 남자는 철저하게 군조직의 일원이 되어간다. 그는 지극히 동물적으로 움직인다. 단 것이 먹고 싶어 생전 보지도 않던 초코파이를 좋아하고, 여자만 보면 환장하고, 잠을 더 자고 싶어한다.

물론 군생활도 나름 의미가 있다. 그러나 2년간이나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또한 군생활은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효율적으로 조직의 일원이 되고 움직이는 방법을 배운다기 보다는 철저하게 고참의 말에 따라 움직이고, 권력자의 비위만 맞추려드는 인간을 양성할 수 밖에 없다.

군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2년이란 짧은 시간동안 가장 하급자에서 가장 높은 자의 경험을 모두 한다는 것이다. 만약 모두가 이등병만 경험하고 전역한다면 어쩜 군대식 문화는 국내에 이렇게까지 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합과 구타문제도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군대는 이병부터 시작해 병장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진급을 하고 그때마다 행동과 목소리가 달라진다. 병장이 되면 그는 ‘왕’이라고 해도 좋다. 하급자들이 모든 자질구레한 일을 해주고, 모두들 그의 말 한마디면 꿈뻑 죽는 시늉까지 한다. ‘권력’의 맛에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등병땐 하루 빨리 집에가고 싶어하던 이들도 병장이 되던 편한 내무생활에 지극히 만족스러워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병장이 된 이들은 이병때 자신이 받은 기합과 구타의 악습을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이다.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야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대 웃어요>에는 군대식 문화가 지극히 좋은 것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지극히 멋진 것이라, 심지어 외국유학을 다녀온 현수마저 순순히 따를 정도다.

군대에선 개성이나 인격 따위는 존중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연구심이 필요한 현수에겐 ‘군대식 문화’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그대 웃어요>가 만약 앞으로 군대문화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5.16 쿠테타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군문화를 찬양하는 것일게다.

이쯤되면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군대 문화가 그렇게 좋고, 모두가 인정한다면 왜 대한민국의 고위 공직자들. 그러니까 공무원과 국회의원 등의 절대다수는 군면제자들이 포진한 것일까? 그들과 그의 자식들은 어떤 면에서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문제로 가지 못한 것인데, 어떻게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위치에 있는 것인지 그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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