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마네킹녀 김태희와 그리스 조각녀 김소연, 아이리스

朱雀 2009. 10. 3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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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까지 방송된 <아이리스>를 보면서 김태희의 연기력 부재를 다시 한번 절감했다. 1-4화까진 김태희의 연기력은 그럭저럭 봐줄만한 수준이었다. 제작진도 그녀의 연기력을 감안한 탓인지 무난한 장면들로 채웠다.

맨처음 김태희가 등장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녀는 이병헌이 헐레벌떡 들어간 대학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화려한 외모의 그녀는 이지적인 느낌을 뿜어냈고, 이후 프로파일러로 분한 그녀는 이병헌과 밀고 당기는 애정관계를 통해 사랑스런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탕하나로 심통부리고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은 워낙 아름다웠고 그 자체로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보는 것 자체로 즐거운 김태희의 모습은 4화가 한계였다. 이병헌이 북측요원암살 임무를 맡아 성공리에 마쳤지만, NSS부국장 백산(김영철)의 음모로 제거될 대상으로 올라갔을때 비극의 히로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연인을 바로 앞에 두고 구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태희의 모습에선 그 어떤 애절함을 찾을 수 없었다.


김태희는 분명 눈물을 쥐어짜내고 큰 소리로 화를 냈지만, 뭔가 부족했다. 반면, 그동안 내내 위압감을 잔뜩 자아내던 김소연은 6화에서 상당히 많은 다양한 연기를 보여줬다.

이병헌을 제거하기 위해 일본으로 잡입한 그녀는 두 번이나 그를 제거하는데 실패한다. 이병헌은 김소연을 두 번이나 잡지만, 김태희가 생각나는 탓인지 죽이질 않고 번번히 살려준다.

그러자 김소연은 갈등하다가 이내 이병헌을 좋아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생각해보면 전혀 말이 안되는 진행이었다. 중간에 모든 과정을 생략한채 보여준 이야기전개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그러나 김소연은 눈빛으로 표정으로 몸짓으로 부족한 이야기를 채워넣었다.

첫 번째 붙잡혔을 때 당황스러워 했고, 두 번째 죽이러 왔다가 다시 붙잡히자 이병헌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이병헌이 이를 거절하고 기절한 그녀를 따뜻한 잠자리에 눕히고 미음을 주변에 놓자, 그녀는 슬프게 울면서 죽을 먹는다. 김소연은 그 장면에서 별다른 대사가 없었다. 그러나 우린 그녀를 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상상하게 되었다.

회복한 김소연은 신세지고 있는 일본 가정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일본아이와 함께 시장을 보며, 낯설어한다. 그것으로 우리는 그녀가 살인병기로서 훈련을 받았지,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혼자 걷는 이병헌의 뒤를 쫓아가며 팔짱을 낄까말까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이내 사랑스러운 여인의 느낌이 다가왔다. 처음엔 팔짱을 허락하던 이병헌이 김태희와 추억이 있는 장소에 이르러, 그녀의 팔을 밀어내자 뭔가 복잡한 표정을 지어낸다.

이병헌의 아지트로 쓰는 창고에 들어와 여러 사진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던 김소연은 뒤적거리던 책사이로 김태희와 이병헌의 사진이 보이자, 질투에 뭔가 여러 가지가 섞인 표정을 자아낸다.

서울로 잡입한 김소연이 김태희를 만났을 때 지은 표정은 최고였다. 이병헌이 생사를 묻는 김태희에게 그녀는 ‘모릅니다’외엔 아무런 대사를 짓지 않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선 김태희보다 더 많은 대사를 표정을 통해 읽어낼 수 있었다.

김태희는 분명히 아름답다. 그녀가 <싸움>이후 별다른 출연작이 없음에도 수많은 광고를 찍은 것은 그녀의 철철 넘치는 매력 때문이리라. 그러나 김태희는 너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타가 되었다. <천국의 계단>에서 악녀로 분했다가 너무 예쁜 외모에 플러스 알파로 서울대라는 그녀의 학벌은 단숨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대스타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후 김태희는 청순가련형의 주인공을 도맡으며 책을 읽는 듯한 대사와 마네킹처럼 아무런 표정 없는 연기로 비난을 받아왔다. 그동안의 그런 여론을 의식한 듯 김태희는 <아이리스>를 위해 연기지도를 받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안다. 실제로 1,2화가 방영되었을 때 그녀의 연기력은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때의 김태희 연기는 그닥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그녀의 화려한 외모와 지적인 이미지를 드라마 초반에 잘 보이도록 배치했고, 그 효과가 주효했다. 1화 마지막 장면에서 고문을 받던 이병헌이 투명유리창을 의자로 부수려 할때, 김태희는 소위 ‘멍’때리는 표정으로 있었다. 놀란다던가, 뭔가 흥미롭던가 표정이 말해야 했는데, 아무런 감정도 대사도 눈빛과 표정등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위험요인은 5화부터 김태희의 약점을 브라운관에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사랑하는 연인이 음모에 빠져 죽을 고비에 처했는 데도 김태희의 표정은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반면 김소연은 1-4화까지 별다른 대사 없이 잠깐씩 출연했음에도, 묵직한 무게감을 보여주었다. 특히 6화에선 다채로운 감정변화를 몇분 안되는 장면속에서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때로는 증오로, 때로는 혼란스러움으로, 때로는 사랑으로...그녀는 다채로운 내면연기를 펼쳐보였다.

북의 강철같던 호위부 요원 김선화(김소연)은 이병헌과 함께 있으면서 어느새 여인의 향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병헌의 목표중에 백산(김영철)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 그의 대해 알아보기 위해(?) 서울로 침투해 목숨을 걸고 필사의 사투를 벌였다.


마네킹은 완벽하다. 그것들은 우리의 환상을 반영해 실제 우리가 이뤄낼 수 없는 아름다운 몸매와 얼굴을 가진다. 그러나 마네킹엔 아무런 표정이 없다. 우린 마네킹을 가리켜 ‘예술품’이라 하지 않는다. 반면에 그리스 조각은 황금비율로 조각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표정과 몸짓은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듯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아이리스>에서 김태희는 분명 주인공이다. 그러나 표정없는 그녀는 마네킹에 비견할 만 하다. 반면 조연급이긴 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120% 해내는 김소연은 그리스 조각에 비견할 만 하다. 외적으로 김태희가 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시청자에게 대사에 없는 세부묘사를 만들어내 전달하는 이는 김소연이기 때문이다.


김태희가 만약 앞으로 연기자로 거듭나고 싶다면, 발성연습과 주연급 자리에만 연연해선 안된다. 비록 조연급이라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개성어린 연기를 해내야 한다. 바로 김소연처럼 때론 눈빛으로 때론 표정으로 때론 몸짓으로, 대본에 단순히 나열된 글자 이상의 대사를 표현해내야 한다.

훌륭한 배우는 완벽히 그 자신이 등장인물이 되어 관객의 뇌리에 남는 인물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김태희는 아직 연기자보다는 광고모델에 더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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