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스스로를 구원한 김태희의 눈물연기, 훌륭한 김소연의 내면연기

朱雀 2009. 11. 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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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 방영된 <아이리스>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놀라운 것은 지난번 포스트에서 ‘마네킹’이라고 지목했던 김태희의 표정과 눈빛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이병헌이 살아 있다고 믿고 7화에서 일부러 놔준 김소연을 쫓아 일본까지 격투까지 벌이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김태희는 이병헌과 함께 추억을 나눈 한 식당을 찾아 그때를 기억하며 눈물을 흘린다.

2009/10/31 - [TV를 말하다] - 마네킹녀 김태희와 그리스 조각녀 김소연, 아이리스

그냥 우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을 사랑하고 기억하며 우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내가 놀란 것은 그동안 전혀 감정이 없던 그녀의 표정과 눈빛에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8화에서 김태희의 연기는 절정에 달한다. 그녀는 친구를 통해 정준호가 심은 이병헌이 죽었다는 거짓정보를 보고는 절망에 빠져 서럽게 통곡한다. 사실 어떤 면에서 8화에서 보여준 김태희의 연기는 ‘늦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아무런 감정 없이 무표정으로 연기를 하고, 책 읽듯 대사를 내뱉던 그녀가 확실히 연기자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그러나 김태희의 인상적인 눈물연기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김소연은 더욱 뛰어난 눈물연기를 보여줬다. 이병헌과 단 둘이 있는 아지트에서, 김소연은 왜 이병헌을 죽이지 않는지, 왜 북으로 돌아가지 않는지 이유를 설명한다.


요원으로 훈련을 받는 7년간 그녀를 지탱한 것은 어머니와 동생들. 즉 가족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견딜 수 있었다. 죄인을 죽이고 요원훈련에서 낙오해 도망간 동기들을 죽이면서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살인병기’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견딜 수 있도록 해준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김소연이 북에서 풀려나고 얼마 되지 않아, 가족들은 죽어버렸다.

김소연은 자신이 겪은 끔찍한 훈련 기간을 생각하며 표정과 눈빛에 변화를 보여줬다. 사실 김소연이 말한 이야기는 대본에 적혀있는 것으로 김소연은 실제로 겪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김소연은 실제 끔찍한 훈련을 받고 인간성이 말살되는 내면의 변화를 겪으며 버텨왔던 가족에 대한 사랑이, 상부의 배신으로 끔찍하게 마무리된 상황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이병헌을 바라보는 연정의 눈빛까지. 그녀는 불과 5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우리가 김소연이 연기하는 호위총국 요원 김선화라는 인물을 머릿속에서 상상해서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 변형시켰다.

김태희에겐 아주 구체적인 ‘이병헌’이란 대상이 있다. 그리고 안타까운 사연과 그를 바로 앞에서 놓친 구체적인 상황이 열거되어 있다. 따라서 누가 빨리 우는지 내기를 벌일 정도로 ‘눈물연기’가 흔한 나라에선 어떤 면에서 평범한 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소연은 다르다! 김소연에게 허락된 불과 5분 남짓한 시간동안 그녀는 단지 대본에 쓰여있는 몇줄을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감정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관객에게 이해시켜야 했다. 김소연은 김태희보다 몇배 이상 어려운 상황을 너무나 짧은 시간안에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말았다.

<아이리스>가 대작 드라마 특유의 몇 가지 문제를 보이면서도 30%이상의 시청율을 기록하며 순항하는 데는, 주연인 김태희가 드디어 ‘감정연기’를 시작하고, 극을 이끌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김소연이 너무나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준 탓도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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