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를 보면서 한예슬이 맡은 한지완이란 캐릭터에 대해 답답하고 짜증날 때가 참 많다. 그녀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게 아니면서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그녀가 처한 환경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또 안타깝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한지완은 산청에 이사온 차강진(고수)을 보고 점점 반하게 된다. 처음엔 그의 어머니 차춘희가 자신의 오빠가 서울대에 합격한 현수막을 무단으로 잘라내, 이를 저지하느라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그녀에게 운동화를 내주고 자신은 맨발로 걸어가는 차강진을 보면서 사랑을 키우게 된다.
원래 복수를 위해 시작된 그녀의 깜찍한 행동은 곧 차강진이 처한 억울한 상황에 대한 연민으로 발전한다. 차춘희가 세들어 간 곳의 작은 사장이 난동을 피우자 한지완은 차강진을 대신해 깜찍한 복수를 하고, 그 때문에 폭행을 당하게 된다. 이를 보다못한 차강진은 그를 때려눕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소중한 팬던트를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의 뜻과 달리 소중한 팬던트를 잃게 만든 한지완은 무려 두달이나 강바닥을 샅샅이 뒤지지만 끝내 찾지를 못한다.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게 된 오빠 한지용은 자신이 찾아주겠다며, 호언장담하고 강으로 들어가지만 결국 차가운 시체가 되어버리고 만다. 게다가 착하고 모범생인 한지용이 죽자, 그 충격에 어머니는 ‘지완이가 죽었어야 된다’라는 말까지 하게 된다.
안그래도 자신 때문에 오빠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한지완은 가출을 결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이제 마음을 열기 시작한 차강진에게 일부러 모욕을 주고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한다.-오빠를 죽였는데 자신이 행복해지면 안되겠다는 마음인지, 일부러 차강진에게서 정을 떼려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크리스마스에>에서 8년 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8년후의 그녀는 아름답게 성장해서, 범서그룹의 1팀장으로 잘 나가는 박태준과 약혼식을 올릴 상황까지 진행된다. 그러나 박태준과 죽고 못사는 이우정(선우선)은 일부러 자살소동을 벌여 박태준이 자신을 찾아오게끔 만들고, 덕분에 한지완은 약혼식이 파했음을 하객들에게 알리는 끔찍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한지완은 애써 웃으면서 ‘다음에 오시면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겠다’하지만 그녀의 웃음과 말은 어딘가 눈물이 묻어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두가 돌아가고 혼자서 30인분 스테이크를 놓고 먹는 그녀앞에, 차강진이 나타난다. 박태준과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차강진은 회사동료의 약혼식에 왔다가 우연히 자신의 첫사랑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한지완은 자신이 얼마나 그를 기다려왔는지, 얼마나 그려왔는지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그저 모른 척하고 그가 가주길 빌 뿐이었다.
심지어 차강진이 바래다 주겠다는 데도, 한지완은 차가운 비를 맞으며 처량하게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수십 번의 통화를 하지만 끝내 약혼자 박태준은 받지 않고, 설상가상 그녀는 끓어오르는 병기운에 쓰러지고 만다. 박태준의 집 앞에 쓰러진 그녀를 차강진은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밤새 간호한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깨어나자, 그는 박태준을 비꼬는 말을 하며 한지완을 변호할 뿐이었다.
한예슬이 연기하는 한지완은 금방 암에 걸려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슴속에 한으로 가득찬 여성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그것도 두 번이나) 자신의 눈앞에서 이우정에게 빼앗겨야 한다. 게다가 한지완이 대찬 여성이어서 이우정에게 뺨따귀라도 날렸으면 속이라도 시원하련만, 한지완은 그러질 못한다. 박태준을 놔주라는 이우정의 말에 겨우 대꾸한 게, ‘안 놔주겠다면요?’라는 정도가 전부였다.
게다가 어렵게 어렵게 마음을 연 장본인 첫 사랑 차강진은 눈앞에서 하필이면 이우정과 키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지완은 자기혐오와 자기애로 똘똘 뭉쳐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지난 8년간을 오빠를 죽인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그녀가 드라마속에서 식탐을 보이는 것은 아마 사랑받지 못한 ‘헛헛함’이 클 것이다.
한지완이 박태준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그의 행동과 말투가 어딘지 모르게 차강진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마음을 연 그는 이우정을 만나고 특별한 사건(?)이 있었지만, 그녀에겐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고 그저 이해주기만을 강요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 사랑한 차강진은 안타깝게도 이우정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물론 여기엔 이유가 있다. 자꾸만 폭식을 하고 토하는 그녀의 행동을 한의학 교수가 죄의식에 사로잡힌 그녀가 차강진을 삼키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음식물을 삼키는 거라 결국 큰 탈이 날것이라 예단한 탓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는 철저히 ‘오진’이다. 이미 한지완은 약혼식에서부터 폭식을 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그녀는 부모가 멀쩡히 산청에 살아있고, 고속버스만 타면 몇 시간만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음에도 가질 못한다. 바로 죄의식 때문이다. 부모님의 너무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오빠를 자신이 죽였다는 죄책감. 어머니가 자신을 저주한 비수와도 같았던 말. 너무나 사랑하지만 오빠 때문에 사랑할 수 없는 남자 차강진.
그리고 혼자 힘으로 서울에서 살아가려니 너무나도 힘들었던 경제적 생활. 겨우 마음을 연 단 한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끌려다니는 형국이며, (거의 포기하려 했던 그 남자)의 여자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그 경제적-사회적 지위로 협박할 때의 당혹감과 억움할.
겨우 마음을 열고 차강진과 데이트 하던 찰나에, 그가 놓고 간 전화를 받자 자신의 아버지가 그녀를 ‘아가씨’라고 부른 일 등등. 한지완에게 세상은 온통 잿빛 암흑속으로 쌓여 있는 세상과도 같을 것이다. 너무나 보고 싶어 병원에서 나와 제일 먼저 찾은 남자가 자신을 위해, 그녀의 눈앞에서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하며 피눈물을 짓는 상황을 비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상황은 그저 시청자의 마음을 후벼 파는 듯 아프게 할 뿐이었다.
9화 예고편을 보면 한지완은 자신을 위해 일부러 마음에도 없는 이우정과 계약연애를 하는 차강진 때문에, ‘고수앓이’를 계속 할 듯 싶다. 자신이 보살펴야 해주어야 할 박태준과 사랑하면서 증오하는 차강진 때문에 그녀가 해야할 고생들이 그저 한동안 시청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 듯 싶다.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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