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헌터스, 김영희 PD의 뼈아픈 실패

朱雀 2009. 12.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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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헌터스>의 ‘멧돼지 축출작전’이 지난 27일 네 번째 미션 실패를 끝으로 첫막을 내리게 되었다. 겨우 한달만에 종영한 ‘멧돼지 축출작전’은 김영희 PD에겐 일밤 복귀 첫 ‘실패작’으로 기억될 듯 싶다.

공익을 위한 예능을 앞세운 김영희 PD에게 <헌터스>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옷이었다. 농민을 울리는 멧돼지의 실상을 고발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된 <헌터스>는 방영 전부터 동물애호가들의 여론 뭇매를 받았고, 실제로 방영내내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는 <단비>와 <우리 아버지>와 재미를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하며 매우 성공적인 가도를 달리는 것과 매우 대조되는 일이었다. 일단 <헌터스>는 지난 4회 동안 멧돼지를 ‘축출’을 제 1의 미션으로 삼았다.

그러나 알다시피 현재 농촌에 피해를 입히고 있는 멧돼지를 옆산(?)으로 쫓는 것은 어찌보면 ‘눈가리고 아웅’하는 처사다. 멧돼지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 몇 시간후라도 다시 넘어올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멧돼지는 다큰 성체는 300kg이 넘을 정도로 거구에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 맹수다. ‘돼지’라는 인식 때문에 우습게 보일 수 있지만, 천적인 호랑이와 늑대조차도 만만히 보지 못하는 맹수이기도 하다. 만약 그런 맹수와 <헌터스>의 엠씨들이 맞부딪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끔찍하다.

물론 <헌터스>제작진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119요원과 사냥꾼들을 대동하고 다녔다. 그러나 현장에서 맹수와 맞부딪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는 <헌터스>의 진행에 아주 걸림돌로 내내 작용했다. 분명 ‘멧돼지 축출’이 주된 내용이건만, 출연자들의 안전을 염려해 직접 그들과 맞부딪칠순 없었다. 그렇다고 멧돼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자니, 방송 포맷에 맞지 않았다. 결국 <헌터스>는 사냥개와 인원을 동원해 멀리서 빠르게 뛰어가는 멧돼지는 잠깐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헌터스>의 가장 큰 고민인 멧돼지 처리 문제도 프로그램 생명에 치명적이었다! 원칙적으로 그나마 제일 깔끔한 방법은 사실 멧돼지를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공익을 위한다는 목적을 내세운 <헌터스>로는 그 방법을 취할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출연자들은 포획틀로 멧돼지를 잡거나, 사냥개와 전문인력을 동원해 쫓아내는 지극히 ‘임시방편’으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어제 방송된 4화에선 그나마 한가지 방법을 더해 울타리 작업을 했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결국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울타리를 친 농가에 가지 못하는 멧돼지는 다른 곳을 찾아갈테니까. 그나마 <헌터스>가 울타리를 친 농가는 한군데 뿐이다.

<헌터스>는 기본적으로 ‘예능’이다. 한마디로 시청자를 웃겨야 하고 뭔가 재미를 줘야 한다. 그런데 <헌터스>는 그런 재미를 주기에 무척 애매했다. 우선 농민들에게 피해상황을 듣는 것부터 그렇다. 한해 농사의 1/3이상을 망친 농민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슬픔에 북받쳐 말하는 농민의 말을 ‘랩’처럼 묘사하는 부분은 상당히 불편했다.

피해 농민에게 멧돼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면서 코믹스럽게 연출하는 것도 그랬다. 무엇보다 제일 난감한 부분은 새벽에 포획틀을 보러 갈때의 연출이었다. 3화에선 천명훈을 놀리기 위해 구하라가 자리를 비워, 어두컴컴한 외딴 곳에서 천명훈을 겁에 질려 보초를 서야했다. 심지어 4화에선 게스트로 온 지상렬을 놀라게 하기 위해, 박제 멧돼지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농촌등지에선 실제 피해자들이 있고, 아무리 장난이라고 하지만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하는 듯한 <헌터스>의 연출은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헌터스>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보진 않는다. <헌터스>로 인해 불거진 논란을 통해 도시에만 사는 현대인들이 현재 우리 농촌 주민들이 멧돼지로 인해 얼마나 막심한 피해를 보고 있는지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특히 차밭으로 유명한 보성녹차밭에도 등장하고, 심지어 해변가에도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이야기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또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멧돼지와 인간의 공존’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허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둘째치고) 농민에겐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했고, 공익을 위한 예능을 위해 김영희 PD가 야심차게 준비한 <헌터스>의 ‘멧돼지 축출작전’이 한달 만에 종영하는 뼈아픈 실패를 맛봐야 했다.

다음 시리즈인 ‘에코하우스’에선 충분한 검토와 대비를 통해 이런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단비>와 <우리 아버지>를 통해 재미를 뛰어넘어선 감동을 보여주는 김영희 PD는 이번 실패를 통해 더욱 진일보한 감동 예능을 선보이는 자극제가 되길 기대해보는 바이다.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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