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이미숙은 왜 전남편을 몰래 만날까? ‘신언니’

朱雀 2010. 4. 15. 13:52
728x90
반응형



<신데렐라 언니> 5화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이미숙이 그동안 몰래 만났던 상대가 실은 전남편이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전남편이 누구인가? 그는 알콜 중독자에 술취하면 이미숙에게 함부로 손찌검을 할 정도로 막되먹은 인간이다.

이미 1화에서 이미숙과 문근영은 그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열차까지 탔다가, 그가 고용한 폭력배에 의해 다시 잡혀오기까지 했다. 따라서 이제 대성도가의 엄연한 안주인이 된 이미숙이 굳이 그녀를 만날 이유 따윈 없다. 그런데 왜 그녀는 8년동안 내내 그와 만나왔던 것일까?

이야기를 거슬러 이미숙이 김갑수를 만난 상황부터 살펴보자. 이미숙은 본디 남자를 좋아하고 적당히 계산적이고 적당히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지난 8년동안 자신과 피한방울 안 섞인 서우를 마치 친자식양 감싸고 돌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김갑수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전처의 자식인 그녀를 위하는 척을 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서우는 양조장의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에게 못된 짓을 했다가는, 자칫 김갑수와 양조장의 다른 식구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고, 최악의 경우엔 쫓겨날 수 있다.

그리고 친자식인 문근영에 비해 서우는 ‘딸’로서 모녀간의 정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크다. 모든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일찍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한 그녀는 첫눈에 이미숙을 마치 자신의 엄마처럼 따르고, 스스럼없이 먼저 안겨왔다.

 

여성에겐 ‘모성애’라는 것이 있다. 비록 자신이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자신을 좋아하고 생각해주는 인물을 굳이 미워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그녀덕분에 자신이 대성도가의 안주인이 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미숙에게 문근영은 친자식이지만, 동시에 웬수 같을 것이다. 도무지 친딸같은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상처가 되는 말만 툭툭 내뱉고, 지금 집에서 나갈 생각밖에 없는 그녀에게 무슨 정이 가겠는가? 물론 친딸로서 어느 정도 ‘혈육의 정’은 있겠지만, 그건 한계가 있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이미 마음에서 벗어난 그녀에게 이미숙이 친밀감을 갖기란 어려울 것이다. 자! 여기서부터 이미숙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이미숙에게 김갑수는 ‘행복’을 맛보게 해준 최초의 남자이자, 안식처다. 허나 마음 편한 쉴 곳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숙은 극중에서 천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술먹고 거친 육두문자를 내뱉고 함부로 멋대로 행동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김갑수에게 보일 순 없다. 양조장 식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겐 지위에 따라 행동해야될 격이 있다. 따라서 아무리 김갑수와 8년이나 살면서 정이 붙었다고 해도,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란 적당히 계산적이라 ‘당신 꼬리가 몇 개야?’라고 애정 섞인 김갑수의 물음 정도다.

의붓딸 서우는 적당히 서로 이용하는 사이고, 친딸 문근영은 이미 서로 부모-자식간으로서 지낼 수 있는 차이를 지나버렸다. 그동안 도망다니고 쫓겨난 그녀의 처지에 비추었을 때, 딱히 연락할만한 친구가 없어 보인다. 설령 있다해도, 만약 그 친구가 김갑수에게 이상한 말을 하거나, 혹시나 자신이 사는 집에 찾아온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하여 이미숙이 편하게 만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전 남편인 털보 장씨밖에 남지 않는다. 털보 장씨는 비록 이미숙에게 손찌검을 하긴 했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너무나 보고 싶어 대성도가에 찾아왔다가, 종가집의 주인으로 행세하는 그녀를 보며 결국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뿐인가? 전화를 걸어 협박을 하고 조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정도 수준에서 멈출 뿐이었다.

 

 

“그런 소리가 어디서 나와? 주제도 모르고? 내가 너랑 노는 게 네가 좋아선 줄 알아? 백번도 천번도 더 말했지. 답답하고 또 답답한 심정, 한달에 한번이라도 달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라고. 나 대성도가의 무려 사장님이랑 정식으로 결혼해서 아들까지 하나 떡 나놓고, 더 이상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어느 집의 안사람이야. 너 같은 인간이랑 내가 똑같은 줄 알아?”



얼핏 생각하면 이미숙이 털보 장씨를 만나는 것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마음 편한 상대나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예전에 배추장사를 하다가 졸부가 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예전에 사놓은 땅이 졸지에 오른 덕분이었다.

덕분에 그는 배추장사를 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평생 배추장사만 해온 그로서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하여 그는 한달내내 술먹고 놀다가, 답답할 때면 방음이 확실하게 되어있는 지하로 내려와, 리어카를 끌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배추를 팔던 시절을 회상했다.

사람에겐 ‘근본’이란 게 있다. 남들이 보기엔 우스꽝스럽거나 천박하거나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사람에겐 더없이 편하고 아늑한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이미숙이 지난 8년간 남편에게 걸려 ‘부정’으로 의심받을 수 있고, 들통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털보 장씨를 만난 것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그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신데렐라 언니>에서 감탄하는 것이 이런 대목이다. 지난 3-4화에서 김갑수 몰래 이미숙이 절에 다녀온다고 하면서 만난 인물. 발레단 오디션에 번번히 떨어진 서우를 집으로 다시 불러온다는 말을 할 때 그녀가 꺼려한 눈치가 자신의 딸인 문근영 때문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러 털보 장씨를 만나러 갈 수 없다는 이유였다는 사실은, 사람에 대한 남다른 묘사와 설정이 돋보이는 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덕분에 동화 <신데렐라>의 계모가 단순한 ‘악인’이었다면, <신데렐라 언니>의 이미숙은 적당히 약고, 적당히 불쌍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게 되었다. 그게 필자가 <신데렐라 언니>를 계속해서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