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숨막혔던 이미숙과 문근영의 연기대결, ‘신언니’

朱雀 2010. 4. 1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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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를 보고 있노라면, 가끔 미드를 보는 착각이 들 지경이다. 마치 미드를 보는 듯한 잘 짜여진 구성에 특히 마지막 부분에 힘줘서 다음 편을 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1화부터 6화까지 명장면은 모두 마지막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5화 마지막에 기훈(천정명)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멈춰서서 눈물짓던 은조(문근영)의 모습이 그러했다. 특히 어제 방송된 6화의 마지막은 압권! 그 자체였다.

악녀 송강숙(이미숙)의 진면모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불어 30년 내공의 이미숙의 노련한 연기와 국민여동생을 벗어나 진정한 연기자로 발돋움하고 있는 문근영의 연기가 첨예하게 맞붙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살펴보자면, 항상 밤늦게까지 연구에 골몰하고 대성도가를 위해 뛰어다니던 문근영은 결국 과중한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병원에 누운 그녀를 보기 위해 온 이미숙과 김갑수는 서우가 하는 말을 듣고는 놀란 표정을 짓고 만다.

김갑수는 서우를 붙잡으러 갔다가 놓치고, 그 사이 이미숙은 딸 문근영과 오랜만에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눈다. 환자대신 침대에 누운 그녀는 “야. 뭘 용을 쓰고 하니, 미련하게. 대충해도 다 니꺼야‘라는 말을 꺼낸다. 즉 <신데렐라>속 계모가 그런 것처럼 이미숙 역시 김갑수의 재산이 목적이었음을 확실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근영은 뜬금없이 과거의 일을 꺼낸다. 군산 때 광목천으로 자살하려는 사건을 꺼낸다. 이미숙은 당신의 일을 ‘쇼’라고 밝힌다. 그러나 문근영이 보기에 그건 자칫하면 정말 죽을 뻔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미숙은 한술 더 뜬다. ‘위험을 감수해야 얻을 수 있다’고 밝힌다.

그제서야 문근영은 본심을 밝힌다. 자신이 또 집을 나가려 한다면 광목천을 끊을 것이냐고. 이미숙은 너무나 쉽게 ‘당연하지’라고 답한다. 문근영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답한다. 그러자 이미숙은 놀라운 이야기를 꺼낸다.

 

“너 업고 쓰레기통도 뒤졌어. 드러운 거라도 안 먹이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뒤져먹이고 너 탈 났을 때, 밤새 열 오르고 니 눈동자 저대로 까무룩 넘어져 흰자만 번득일 때, 하느님 아버지, 부처님 신령님 네 새끼 죽이기만 하라고, 내가 가만 놔둘질 아느냐고. 하늘이고 나발이고 한입에 꿀꺽 삼켜 잘글잘근 씹어주겠다고. 사람으로 품위 지키고 살기 포기했어. 내가 누군지 알어? 하느님 부처님 하고 맞장 떠서 이긴 년이야. 광목천? 백번도 끊을 수 있어. 난.”

이미숙은 이 대사를 치면서 30년 연기내공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겨우 1분 남짓한 대사동안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질기고 따스한 모성애를 느끼게 했다.

이미숙의 이야기는 대본에 몇줄 써져 있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미숙의 대사는 정말 그런 처참한 순간을 보내며, 자신의 핏줄을 살리기 위해 하늘을 저주하기를 원망치 않던 진한 모성애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뒤져 거둬먹이고, 그것이 탈나 죽을려고 하자 고래고래 악을 지르고 피눈물을 쏟으며 하늘을 저주하던 그녀의 모습이 절로 겹쳐질 정도로, 그녀의 차분한 대사속엔 감정이 철철 넘쳤다.

그를 상대하는 문근영은 또 어떤가? 문근영은 새삼 어머니 이미숙의 모성애를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여기에는 감동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었다. 바로 새아버지 김갑수에 대한 죄송함이다.


 

문근영: 효선이 아버지 좋아는 해? 효선이 아버지 그냥 뜯어먹을 게 많은 남잔거야?

이미숙: 얼랄라?

문근영: 효선이 아버지 좋아는 하는 거지, 엄마?

이미숙: 뭐 그런 거지 같은 걸 물어?

문근영: 뜯어먹을 게 많은 남자가 아니라 좋아서 살아서 말해주면, 엄마 용서할게.

이미숙: 이게 왜 이렇게 청승이야? 좋다 왜. 좋다. 뜯어먹을게 많아서 좋다. 왜?

문근영: 아아악!


 

이 장면은 많은 걸 내포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동안 문근영은 작은 악녀로 분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정을 못 붙이도록 독한 말을 톡톡 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살았다. 자신을 8년 동안 친아버지처럼 보살펴준 김갑수에게 ‘자신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그러나 문근영은 정말 ‘못된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김갑수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녀가 몸이 안 좋아질정도로 일에 매달린 것은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물론 술 익는 소리와 기훈(천정명)과의 추억도 컸지만 말이다.

그러나 문근영은 사실 왜 자신의 어머니가 김갑수와 결혼했는지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재산을 뺐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기실 자신을 위해서였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애정을 베풀어줄 사람. 너무나 큰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 그 분을 자신과 어머니가 이용하러 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문근영은 동시에 자신의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했다. 비록 어머니 때문에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자신을 위해 목숨마저 포기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런 어머니의 삐뚤어진 애정과 지극한 모성은 그녀가 늘 집에서 ‘탈출’을 꿈꾸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녀가 그녀 자신으로 올바로 살 수 없고, 늘 어머니를 보면서 죄책감을 갖게 되고,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의붓아버지를 이용하려 든다는 죄책감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도 든다. 정말 이미숙에게 단순히 김갑수는 호구일까? 그저 등쳐먹을 대상일까? 물론 그런 것도 있다. 그러나 8년동안 살면서 정이 든 사람에게 그런 마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허나 딸 문근영이 자꾸만 굴러온 호박을 포기하려고 하자, 마음을 다잡게 하기 위해 더욱 심하게 몰아붙였을 것이다. 그녀 역시 결국 자신보다 자식을 더욱 생각하는 이 땅의 어머니니 말이다.

위붓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사랑이 뒤범벅되어 절규하며 울부짖던 문근영의 연기는 ‘명품’ 그 자체였다. 30년 내공의 중견 연기자 이미숙과 문근영의 팽팽한 대화신은, 별다른 연출이 없는 데도 두 사람만의 대사와 표정만으로 화면을 압도하는 무게와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신데렐라 언니>가 수목극 1위를 지키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한 명장면이라 감히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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