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 위키백과 당시 태평천국운동을 진압하지 못한 청조정은 ‘내분을 먼저 수습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러시아의 중재를 받아들여 북경조약을 체결한다. 함풍 11년(1861) 8월21일 함풍제가 서태후의 아들 재순을 황태자에 봉한다. 함풍제가 바로 다음날 숨을 거두자, 열하에서 상경한 서태후는 공친왕과 공모하여 11월에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움켜쥐게 된다. 이때 증국번은 흠차대신으로 임명하고, 좌종당을 태상사경에 봉해 태평천국 진압을 명하게 된다. 좌종당은 증국번과 오랜 시간 태평천국군을 진압하면서 자주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전략을 신중히 짜는 증국번과 상황에 따라 긴박하게 움직이는 좌종당의 확연한 스타일 때문이었다. 여기에 한 살 터울의 나이차는 더욱 의견 차이를 강하게 했다.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