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동이’의 악녀 장희빈은 실패한 캐릭터일까?

朱雀 2010. 6. 2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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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지난주 화요일 방송분인 <동이>를 재방송으로 어제야 볼 수 있었다. 보면서 이소연이 연기하는 장희빈을 보면서 문득 ‘정말 실패한 캐릭터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이>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기존 장희빈이 벌였던 악행은 오빠인 장희재가 모두 짊어진 모양새다. 그는 세자의 고명문제로, 조선의 청국국경 관련 군배치 상황이 담긴 국기기밀문서인 ‘등록유초’를 넘기려고 할 정도로 정말 끝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반면, 구중궁궐에 앉아 있는 장희빈은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장희빈과는 달리 너무나 얌전하고 너무나 숙종의 사랑을 애달프게 원하고 있다. 분명 음모를 꾸미긴 하지만, 거기엔 그녀 스스로 원했다기 보다는 흘러가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인간의 한계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도 비교하긴 했지만) <동이>의 장희빈은 <선덕여왕>의 미실과 종종 비교를 당한다. 시대도 다르고, 상황도 다른 두 사람이 비교를 당하는 것은, 작년 한해 <선덕여왕>의 인기가 대단했고, 특히 고현정이 연기한 미실은 지금도 대중의 뇌리에 박혀있을 정도로 엄청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고현정이 연기한 미실은 이소연이 연기하는 장희빈과 스케일이 다른 인물이다. 비록 왕이 되진 못했지만 왕 못지 않은 권세를 누렸고, 군주의 위엄과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도저시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매력을 지닌 인물을 애초에 조선시대의 장희빈이 이길 도리란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고현정이 연기한 미실은 지금 현재 이소연이 연기하는 장희빈보다 쉬운 부분이 존재한다. 바로 고현정 이전까지 미실을 TV에서 제대로 연기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실은 악역 캐릭터로 잠깐 잠깐 출연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그냥 지나가는 수준으로, 대다수 시청자들은 ‘미실’이란 인물을 <선덕여왕>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물론 고현정은 생애 최초의 악녀인데다,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 사극에서 연기를 펼친다는 점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 허나 이전까지 아무도 미실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가 창조해내는 미실에 대해 대중이 별다른 선입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반면, 이소연이 연기하는 장희빈은 이전까지 사극에서 ‘단골’로 등장한 인물이다. 그냥 따져봐도 1982년 이미숙-1988년 전인화-1995년 정선경-2003년 김혜수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은 모두 ‘장희빈’을 연기했다. 게다가 장희빈은 사극에서 ‘악녀’ 캐릭터로 다들 악독한 캐릭터로 그려내기 위해 애썼다.

 

이런 상황에서 <동이>의 이병훈 PD는 ‘한명쯤 다른 장희빈’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동이>의 장희빈은 이전과 사뭇 다르게 등장한다. 어린 동이가 그녀의 수화 신호를 봄으로써, 훗날 그녀가 어떤 음모에 개입된 것은 어렴풋하게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동이> 초반에 등장한 장희빈은 기꺼이 천민출신의 동이를 위해 스스로 곤경에 빠질 정도로 바르고 강직한 인물이었다.

그런 장희빈은 숙종이 동이를 마음에 두고 있고, 친오빠인 장희재의 충동과 중전이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결국 악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동이>에서 장희빈은 항상 뭔가 머뭇머뭇하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이번 방송분에서도 장희빈은 그런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숙종과의 대화에서 소학의 한구절인 ‘언필충신 행필정직’-말은 반듸 거짓이 있어선, 행동은 바르고 곧아야 된다-이 나오자, ‘거짓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마음이 좀 불편했다’라는 말을 한다.

 

숙종은 별 다른 뜻 없이 한 이야기지만, 원래 정직하고 밝은 성품이었던 장희빈이 궁궐에 들어와 음모와 궁중암투에 빠져들면서 자신의 원래의도와는 다르게 ‘정직하지 못한 길’로 들어들었다. 자신과 정치적 노선이 다른 이유로 시어머니인 명성대비를 독살했고, 그 누명을 고스란히 인현왕후에게 뒤집어 씌웠다. 게다가 한때는 가까운 사이였던 동이는 자객을 시켜 암살했다.

그런 짓을 저지른 장희빈으로선 숙종의 말이 마치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는 듯한 말로 비춰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장희빈은 숙종에게 느닷없이 ‘거짓말은 한 적이 있어도, 거짓웃음을 보인 적은 없다’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이 말은 동이를 마음에 품고서 자신을 향해 웃음을 보이는 숙종을 향한 ‘원망의 마음’이 서려있다. 지존인 숙종은 공식적으로 여러 아내를 둘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장희빈은 과분한 성은을 입어 중전까지 이른 몸이다. 그런데 그녀는 감히 적반하장격으로 임금의 온전한 마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머리론 안다. 허나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독대한 자리에선 ‘..저는 전하의 마음을 제일 믿고 싶었나 봅니다. 사람이 사는 게 이런 가 봅니다. 제가 전하께 지은 죄는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고, 전하께서 저를 속이신 것만 이토록 힘겹게 아프고 원망스럽습니다’ 말까지 내뱉는다.

 

이소연이 연기하는 장희빈은 우리가 이전까지 알고 있던 장희빈에 대한 이미지를 전복시킨다. 물론 <동이>속 장희빈 역시 중전을 자리에 오르기 위해, 지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장희빈은 이전까지와는 달리 인간적 고뇌와 아픔이 자주 내보인다.

기존의 악독한 장희빈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유약하고 머뭇거리는 장희빈에 감정이입이 되질 않고, 갸우뚱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물론 여기엔 <동이>의 한계도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우선 <동이>의 주인공인 동이인 이상, 장희빈이 돋보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대로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이 한번씩 거쳐간 장희빈이 쌓아온 이미지를 이제 막 신인에서 벗어난 이소연이 깨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정적으로 <동이>의 대본적 한계는, 배우 이소연의 연기력을 보이는데 극명한 한계점을 드러낸다. 하여 <동이>의 장희빈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사는 데, 분명 일정 부분 실패했다.

허나 <동이>의 장희빈은 무척이나 인간적이다. 또한 우리가 ‘악녀’라는 관점으로만 보면 장희빈은, 인간 장희빈이란 관점에서 재해석 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동이>속 장희재가 이전까지 사극과 달리 계략가스타일로 탄생한 것엔, 장희빈이 안고 있는 이전까지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하나의 조치였을 것이다.

하여 우리는 밝고 총명한 여성이, 시대의 흐름과 인간적인 욕망으로 정점에 올랐다가 이제 파멸해가는 과정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동이>속 장희빈은 충분한 의미는 있다고 본다. 적어도 다른 시각에서 장희빈을 보게끔 만드니까 말이다. 그리고 기존 선배 연기자들이 구축해놓은 장희빈과 다른 이미지를 구축해가는 이소연의 연기도 상당히 훌륭하다고 본다. 시청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필자도 이소연의 연기에 대해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지적했는데, 지난 방송분을 보면서 많이 다르게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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