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21세기에 ‘구미호’는 안방극장을 어떻게 점령했나?

朱雀 2010. 7. 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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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 여우누이뎐>(이하 <구미호>)의 행보가 심상치가 않다! <동이>와 <자이언트>가 버티고 있는 월화드라마계에서 약 11%대의 시청률로 선전중이다. 공포물도 사극도 아닌 <구미호>의 애매한 장르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이건 상당한 결과다.

 

<구미호>는 이전까지의 극화된 <구미호>와 다르다. 이번 <구미호>는 이전처럼 인간이 되기위해 10년간 인간 남편에게 핍박받는 구미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후, 그러니까 10년에서 하루를 못 채우고 인간이 되지 못한 구미호에게 반인반수의 딸(연이)이 있고, 그 연이를 놓고 살리려는 구미호와 그녀를 죽이려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번 <구미호>는 그 어떤 공포물보다 무섭다. 그러면서 그 어떤 <구미호>보다 인간의 속성을 깊숙이 파고 내려가 해부하고 있다.

 

예를 들어볼까? 현재 연이의 양아버지인 윤두수는 전직 무관이자 낙향한 명문 사대부가의 가장이다. 그에겐 정실인 양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초옥이란 딸이 하나 있는데, 그녀는 현재 병명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괴병에 걸려있다. 백약이 무효인 이 병은 그나마 병을 호전시키는 방법을 알려준 만신이, 한날 한시에 태어난 연이의 간을 먹여야만 나을 수 있다는 해괴한 비책을 알려주어 그를 고민에 빠뜨렸다.

 

윤두수가 애초에 구산댁(구미호)와 연이를 집에 들인 것은 딸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두 모녀의 착한 마음씨와 구산댁의 아름다운 미모와 범상치 않은 연이의 그림솜씨를 보면서, 두 모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때부터 윤두수는 끊임없이 내적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 그의 속마음은 어떻게든 초옥도 연이도 살리고 싶지만, 상황은 계속해서 그를 압박하고 이번주 방영된 분량에선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이를 희생시켜 자신의 딸인 초옥을 낫게 하기로 결정한다.

 

자신의 딸을 낳게 하기 위해 다른 이의 딸을 희생시키다니. 이건 말도 안되는 미친 짓이다. 허나 이런 무한 이기주의를 쉽게 욕할 수 없는 것이, 만약 자신의 딸이 괴병에 걸려있고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이런 가정이 떨어졌을 땐 쉬이 ‘난 안한다’라고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사회는 자식의 앞날을 위해 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나보내면서, 아버지는 고국에서 돈만 벌어서 보내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함께 떠나는 ‘시한부 이산가족’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자식에게 좀 더 좋은 기회를 주기 위해 부모의 희생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 뭔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가정이란 집단은 구성원이 서로가 서로 행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단이다. 그런 집단이 ‘자식의 교육’을 위해 ‘시한부 해체’과정을 겪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끝없는 욕심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고 하지만, 이는 자식이 남들보다 잘 되길 바라는 욕심에서다. 오늘날처럼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자식에게 좀더 나은 기회를 주기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 자식을 보내고, 그것도 부족해 엄마가 따라가는 행위는 한쪽면은 분명 희생이지만, 다른 한쪽면은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가능하다’는 무한한 이기주의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구미호>가 21세기인 오늘날 시청자들의 반향을 이끌어내는 것은 공포물이라서가 아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구미호가 나와서도 아니다. 거기엔 ‘내 자식만 잘돼면 돼!’라는 무한한 욕심을 가진 우리 세대의 부모의 일그러진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호>의 부모들은 너무나 이기적이다! 윤두수와 양부인은 초옥을 살리기 위해 연이를 죽이려고만 든다! 구미호 역시 마찬가지다. 조금 덜하긴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딸인 연이의 정체를 정규도령이 알게 되자, 부엌칼을 들고가서 죽이려고 한다. 비록 연이의 간청으로 그만두긴 하지만, <구미호>속 부모들은 모두 자신의 자식에 대해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 부모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게다가 <구미호>속 인간들은 삐뚤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구미호를 쫓아다니면서 시시때때로 곤경에 빠뜨리는 퇴마사는 단지 그녀가 ‘요물’이라는 이유로 죽이려 한다. 거기에는 그녀의 입장에 대한 고려나, 연민 따위는 없다. 그저 ‘인간이 아니기에’ 죽이려 할 뿐이다.

 

윤두수의 첩실인 계향은 본부인인 양부인과 흉계를 꾸며 어떻게든 구산댁을 죽이려 하며, 마을의 현감인 조현감은 어떻게든 윤두수가 연이를 죽이려 한다는 증거를 찾아내 그를 파멸시키려 한다.

 

반면, 계향의 아들인 충일은 초반에는 연이를 괴롭히다가 착한 그녀의 성품에 반해 연이를 돕고자 하고, 머슴인 천우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며 구산댁 모녀를 돕기 위해 애쓴다.

 

<구미호>의 다른 관전 포인트는 이렇게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다. 각자의 위치와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그들은 서로 복잡한 애증의 관계를 만들어서, 각자 자신의 욕망에 따라 충실하게 움직인다.

 

이런 복잡한 인과관계와 자식에 대한 무한 헌신이란 탈을 쓴 무한 이기주의가 판치는 오늘날의 세상을 그대로 박아놓은 탓에 <구미호>가 오늘날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두자리수의 시청률을 이끌어 내는 게 아닌가 싶다. 월화드라마는 <구미호>는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추악한 얼굴을 비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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