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공포영화를 능가하는 공포와 전율을 안겨준, ‘구미호’

朱雀 2010. 8.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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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구미호>를 보면서는 그 어떤 TV공포물보다 서늘한 공포를 받았다. 어제 방송된 9화에선 차마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바로 윤두수 대감이 자신의 딸인 초옥을 위해 구미호의 딸인 연이를 죽이고, 그녀의 간을 가져다가 딸에게 먹인 일이었다.

 

처음엔 윤두수는 칼을 높이 치켜세웠다가 내려버렸다. 차마 어린 아이를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부인이 보내준 것은 피묻은 초옥의 손수건과 초옥이 제일 좋아하는 사탕이 들어있었다.

 

이는 ‘반드시 딸아이를 살리기 위해 연이를 죽이라’는 소리없는 아우성이고, 외침이었으며, 그 어떤 말보다 무서운 요구였다. 결국 윤두수는 연이를 죽였다. 화면에는 약간의 피가 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반쯤 얼이 빠진 그의 표정과 간을 가지고 나가면서 맞부딪친 구산댁을 보며 당황해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더욱 사실감 넘치게 다가왔다.

 

연이의 간을 부인에게 내어주곤 시장하다며 밥을 먹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사실적이라 온통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남편이 건네준 간을 ‘장하다’라면서 받아서, 떨리는 손으로 초옥의 입에 넣어주는 광경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살아있는 멀쩡한 아이를 죽이고, 그 아이의 배를 갈라 간을 꺼내 딸아이에게 먹인다는 이 처참하고 끔찍한 설정은 비록 매체의 특성상 제대로 보여주진 못하지만, 오히려 보여주지 않기에 더욱 끔찍하게 다가왔다.

 

그 이후의 과정도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윤두수는 하인들이 초옥이 ‘사람의 간을 먹고 건강해졌다’라는 수근거림이 돌자, 그 즉시 소문의 진원자를 끌어내 구타를 하고는 이도 부족해 인두로 입을 지져버렸다.

 

그뿐인가? 구산댁을 죽여 후환을 없애려는 그의 모습은 이전까지 선량했던 모습과 겹쳐 무섭게 다가왔다. 죽은 연이를 묻고 윤두수의 집에 나타나 ‘갈기갈기 찢어죽이겠다’고 외치던 구산댁(구미호)는 또 어떤가? 현감과 대작하고 있던 그의 앞에 나타나 술주전자를 높이 들어, 그의 얼굴에 쏟아 부으면서 저주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소름끼치기 없었다.

 

방송예고를 보니 내일 방송분에서 구산댁이 윤두수를 홀려 복수를 위해 그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그려질 듯 하다. 초옥에게도 죽은 연이가 나타나 괴롭히는 장면이 나오는 것 같던데, 어떻게 이후의 과정이 그려질지 그저 궁금하다.

 

<구미호>의 원조격인 <전설의 고향>에선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해, 효과음을 많이 집어넣고 극단적인 설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공포영화를 많이 본 요즘 세대에게 <전설의 고향>은 한계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반면 <구미호>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탓인지, 이전까지 고민하는 윤두수를 통해 ‘혹시 연이를 안 죽이지 않을까?’라는 헛된 기대를 갖게 했다. 게다가 아이를 좋아하고 구산댁을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그런 기대를 더더욱 높였다.

 

그러나 막상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살아있는 다른 아이를 죽이는 끔찍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차마 인간으로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선량했던 인간이 잘못된 선택으로 악인이 되어가는 모습은 너무나 끔찍하다.

 

아이를 죽인 후 온전히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정신이 나가 멍해진 그의 모습은 어떤가? 자신의 딸을 죽인 이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복수를 맹세하는 구산댁(구미호)의 모습은 어떤가? 과정은 길게 가져가되 결정적 순간은 짧게 보여주고, 그마저도 생략을 통해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훌륭한 연출력을 통해 <구미호>는 이전의 어떤 국내 TV물로 해내지 못한 극도의 공포감을 시청자에게 주었다. 앞으로 나머지 분량동안 또 어떤 극단의 체험을 하게 해줄지 그저 기대감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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