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주접떨기(시사)

분노를 잊은 우리를 꾸짖는 드라마 '선덕여왕'

朱雀 2009. 7. 2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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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월요일 밤 10시에 방송된 <선덕여왕> 17화에서 공포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미실에 대해 분노를 역설하는 김유신의 외침이 상당히 큰 울림으로 전해져왔다. 월식을 정확히 맞춰 신라에 크나큰 재앙이 올거라 예언한 미실은 가야계 유신을 서라벌에서 200리 밖으로 쫓아내는 길만이 재앙을 막는 길이라 한다.

그녀의 신통력에 굴한 신라 황실은 가야계 유민의 강제 이주를 결정한다. 김서현은 자신의 집을 찾은 미실에게 점잖게 대한다. 이에 김유신은 항거한다. 그러면서 외치는 그의 대사가 걸작이다!

그의 아버지 김서현은 무턱대고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미실의 다음 수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분노했다간 자신은 물론 가문까지 큰화를 입을 수 있다고. 그러나 김유신은 당당히 말한다.

“아닙니다. 분노가 먼저에요. 우리 집안의 이가 먼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그렇지 않기에 우린 미실에게 놀아난 겁니다. 미실은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하여 우리는 분노도 생각도 행동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절절히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문학은 대중문학은 그 시대의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법이다. 미실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절대악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한다. 심지어 천재지변까지 ‘사다함의 매화(책력)’을 통해 예측해 이를 이용, 예언을 하고 대중의 공포를 자아낸다. 자신을 향한 갖은 소문을 퍼트려 공포로 모든 이들을 조종한다.

이에 항거하는 천명공주와 김유신 그리고 덕만의 힘은 미미할 뿐이다. 그들 역시 미실의 절대적인 힘과 카리스마에 벌벌 떤다. 허나 유일하게 김유신만이 드라마 상에서 정당한 분노를 터트릴 줄 안다.

정당한 분노란 무엇인가? 잘못된 일을 보았을 때 화를 낼 줄 알고 떨쳐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4.19의거를 생각해 보라. 이승만 정부가 투표를 조작하자 이에 항거해 국민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다. 여기엔 김주열 열사의 죽음도 큰 원인이었다. 당시 앞장선 이들은 훗날이나 정치적 수 따윈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잘못된 일에 대해 분노하고 일어섰을 뿐이다.

1987년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사건은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고 6월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보라! 지난 1월 20일 경찰의 강제 철거 진압에 의해 용산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 1명이 사망했다. 예전 같으면 국민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자신과 측근을 압박하는 검찰 수사를 견디다 못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현 정부는 명백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치적 타살했다. 그러나 정부는 한 마디 사과도 없었다. 시민들은 분향소를 마련하고 분노를 토로했으나 그뿐이었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고 있다.

안다. 몹시 두렵다는 사실을. 이 글을 자판으로 두들기고 있는 타자 역시 매우 두렵다. 현 정부는 공안의 칼날을 시민사회 곳곳에 널어 놓았다. 작년 촛불 시위를 촉발시킨 PD수첩은 1년여가 넘는 조사 끝에 결국 기소했다. 미네르바는 구속되었다가 풀려났고, 전방위에 걸쳐 노무현 정부의 인사들은 모조리 색출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쫓아내고 모두 측근을 앉혔다.

정당한 소비자 운동은 희한한 법논리를 내세워 ‘불법’으로 낙인 찍었고, 정부의 말에 토를 다는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보복’했다. 그야말로 강권정치와 철권통치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만하다. 오죽하면 진보신당 노회찬대표는 “고문만 빼놓고 다하는 시대”라고 개탄했다.

미네르바의 구속은 네티즌들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촛불시위와 관련된 이들은 모조리 불러다 조사하는 경찰의 행위는 시민들을 겁에 질려 시위에 참여하는 데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사회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지배하는 사회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오늘날 정부가 국민을 겁박하고 다스리는 것은 오로지 ‘공포’와 ‘힘’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이 외치는 것처럼 불의에 항거해 분노해야 한다.

만약 분노해서 떨쳐 일어났다가 깨지고 끝내 옥쇄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정치적 부담을 지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정당한 분노를 잊었다. 이건 매우 슬픈 일이다.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고 걱정한다. 그러나 정당한 분노를 잊었는데 걱정하거나 염려하는 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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