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즐거운 나의 집‘을 위한 변명

朱雀 2010. 11. 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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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즐거운 나의 집>에서 김진서(김혜수)가 외박한 남편 이상현(신성우)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췌장암 말기’라고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막장’이란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동의했을지 모르겠다.

 

또한 <즐거운 나의 집>에선 주인공들의 약간 농도 짙은 애정신이 보여짐으로써 ‘선정적’이란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그런 의견들에 동의할 수 없어 몇 마디 쓰려고 한다.

 

우선 <즐거운 나의 집>의 장르는 잘 알려진 대로 ‘미스테리 멜로’다. 작품 소개를 보면 “‘장미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결혼 10년차 부부와 남편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내용을 더 자세히 살펴볼까? 김진서는 37살의 정신과 의사로 아름답고 직업적인 능력도 대단하다. 게다가 멋진 남편과 아들까지 있는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실상 한꺼풀을 벗겨보면 그녀의 행복해 보이는 결혼생활은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믿었던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그 이후 남편을 믿지 못하고 항상 그를 증오하면서도 이를 ‘아들’을 핑계삼아 덮고 사는 중이다.

 

명성대 시간강사인 이상현은 더 하다! 그는 겉보기엔 집안일도 바쁜 부인을 위해 대신하고 아들을 챙기는 자상하고 멋진 아빠지만, 사실은 부인보다 못한 자신의 지위와 벌이에 심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그가 바람을 피운 것은 어떤 면에서는 ‘도피처’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극 초반 남편을 죽였을 지도 모르게 등장한 모윤희는 현재 겉모습만 보면 명성대 이사장 부인이자 뇌쇄적인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팜프파탈로 오인될 지경이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어린 시절 가난하게 보냈고, 거기에 더해 자신의 아버지의 폭력 밑에서 자랐다. 거기에 더해 그럴 때마다 자신을 돌봐주던 친오빠 같던 이상현을 라이벌 김진서에게 빼앗기는 아픔을 당해야 했다.

 

<즐거운 나의 집>의 삼각관계를 이루는 세 사람을 간단히 소개하면 위와 같다. 여기에 여러 가지 사건과 이야기가 개입되면서, 이야기는 꼬여간다.

 

가령 1화에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결혼했던 냠편 성은필은 술만 마시던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최악의 남편이었다. 참다못해 휘두른 와인병에 그만 그는 쓰러졌고, 놀라서 별장에서 도망갔던 그녀가 되돌아보니 이미 방안은 말끔히 치워지고, 남편마저 사라진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즐거운 나의 집>의 인간관계는 얽히고 설켜 있다. 그들은 모두 욕망을 가졌고, 과거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윤희는 시누이인 성은숙과 김진서가 성은필의 석연치 않은 교통사에 대해 제 1 용의자로 꼽는 인물이다.

 

남편 성은필에게 그녀가 휘두른 와인병은 분명 죽음에 이르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자신에게 편한대로 기억하는 것일 수 있다.

 

성은필의 제 2 용의자는 이상현이다. 그는 평소 윤희를 동생처럼 생각했고, 자신이 다니는 명성대의 교수가 되기 위해 애쓰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가 윤희가 성은필의 폭력 아래 있었다는 사실과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그가 가까이 두었다는 사실등을 알게 되었다면 충분히 ‘살해동기’가 생길 수 있다.

 

김진서 역시 용의자 선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녀는 성은필을 6개월 가량 상담하게 되면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모윤희를 파멸시키고자 혹은 다른 이유(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에서 성은필을 죽였을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성은필이 사실 죽지 않고 모든 상황을 주시하면서 은밀한 곳에서 이를 즐기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즐거운 나의 집>은 복잡한 인간관계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모순-이를테면 이상현이 강사생명을 걸고 한 교수의 비리를 고발했지만 무위로 돌아간 일, 이상현이 다른 대학의 부교수가 되기 위해 5천만원을 상납한 일-등등이 펼쳐진다. 등장인물은 각자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그런 과정속에서 상처를 입히고, 다른 이들에게는 반드시 숨겨야만 하는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

 

<즐거운 나의 집>은 기본적으로 성인을 위한 드라마다. 얽히고 설킨 치정관계는 충분히 서로를 죽일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극중 초반에 벌어진 성은필의 의문사와 하나씩 밝혀지는 각 인물들의 비밀 그리고 서로를 미워하는 김진서와 모윤희의 암투등은 우리에게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따라서 <즐거운 나의 집>에서 다소 강도가 있는 애정신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본적으로 ‘치정’이 주요소재인 드라마에서 오히려 남녀간의 애정신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아울러 3화에서 문제가 되는 ‘췌장암’이라고 거짓말을 한 부분은, 물론 의사로서 절대 해선 안될 말이지만, 한번 배신한 남편이 외박을 하고 왔고 거기에 모윤희가 전화해서 도발했기에 김진서의 입장에선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해선 안될 말을 내뱉어버린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실제 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이야기엔 힘이 있다. 여기엔 개연성과 등장인물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유능한 정신과 의사지만 막상 자신의 남편의 부정에도 다른 여자들처럼 반응하는 김진서나 집안에선 멋진 가장이지만, 교수가 되지 못해 안달하는 이상현의 모습은 실제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

 

물론 밤 10시에 하는 드라마가 기왕이면 밝고 건강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심야에 드라마를 보는 것은 ‘뽀뽀뽀’처럼 건전하고 명랑한 것을 보기 위함이 아니다.

 

인간의 밑바탕을 훑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이기심과 추악한 모습을 반추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런 미스테리 멜로는 그 자체로 흥미를 자아낸다. 물론 <즐거운 나의 집>의 상황은 실제로 읽어나면 안된다. 그러나 ‘미스테리 멜로’라는 자체가 살인과 치정처럼 자극적인 소재를 놓고 다루는 장르물이다. 그런 오락물에 ‘막장’이니 ‘선정적’이라고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방송심의상 일정 수위는 지켜야겠지만, 장르물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모든 것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밀고 판단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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