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중국제국을 해부한 단 한권의 책, '제국을 말하다'

朱雀 2011. 4.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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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역작인 <로마인 이야기>15권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잘 읽힌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탓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장점을 들라면, ‘로마라는 거대제국이 어떻게 작동하고 유지될 수 있었는지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나온 로마관련서적들은 초점이 인물에만 맞춰져 있어서, 정작 로마제국에 대해선 제대로 해부하지 못했다.

 

서구에 로마제국이 있다면, 동양에는 중국이 있었다. 물론 중국의 역대 제국들은 천년은커녕 5백년도 존속되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전후 4백년을 가진 한나라를 그토록 숭배했을까? 그러나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와 바로 그 뒤를 이은 한나라는 이전까지의 중국을 지배했던 왕조들과 전혀 달랐다.

 

무엇이 달랐을까? 생각해보자! 오늘날 진시황과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에 대한 악의적인 비판이 판을 친다.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기 위해 신하를 파견하고, 각 지방의 미녀를 뽑아 아방궁에 넣고 즐기고, 경서를 불태우고, 학자를 파묻는 등. 그의 악행을 우린 잘 기억하고 있다.

 

물론 전혀 역사적 기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악의적인 구석이 많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바로 진나라가 법가에 기초를 두었는데, 너무 사소한 것까지 법으로 규정해서 너무나 쉽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진시황제의 명칭은 너무나 휘황찬란한 것이다. 진은 나라이름이라 빼면, 시황제가 되는데, 말그대로 첫번째 황제라는 뜻이다. 황제라는 단어역시, 진시황이 처음 쓴 것으로, 중국의 전설적인 제왕인 삼황오제의 준말로 자신이 삼황오제보다 훌륭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어떻게 보면 자존심을 넘어서서 오만해보이기짝이 없는 명칭이 불과 60년도 존속하지 못한 진나라의 시황제가 몇천년이 흐른 지금까지 유지된 것일까? 간단하다. 중국의 제국시스템은 진시황제때 창안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진시황제 이전까지 중국의 역대왕조는 말이 좋아 왕조지 실권이 없었다. 보통 중국의 최초 왕조는 하--주를 칭한다. 그러나 하나라와 은나라(또는 상나라)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사료가 거의 없다. 조금 남아있는 주나라를 보면, 창건 당시 황족과 공신들에게 봉지를 나눠주어, 그들이 제후로서 그곳을 다스리게 했다.

 

황제 역시 자신이 직접 다스리는 땅이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서 제후가 힘이 세지면 스스로 그 지방의 왕을 칭하고, 다른 제후의 지역을 침범하는 사례가 자주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춘추전국시대(BC 770-221)이다!

 

따라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획기적으로 시스템을 바꿨다. 바로 중국을 군밑에 현을 두고, 제후가 아니라 관리를 보내서 중앙에서 직접 통치케 한 것이다. 이를 군현제라 하는데, 이때부터 실질적인 제국이 탄생했다고 봐야 옳다.

 

진시황제의 업적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는 도량형을 통일하고, 글자를 통일하는 등의 작업을 했다. 이전까지 중국의 나라들은 서로 말이 다르고 글이 다르고 도랑형이 달라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진시황제가 훗날 분서갱유라 일컫는 일을 저지른 것도 알고보면, 아직 시작된지 얼마안되 제국이란 시스템을 뒤흔들려는 학자들과 그들의 괴이한 사상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뿐이다. -실제 규모는 훨씬 작았으나, 훗날 앙심을 유학자들이 이를 크게 부풀렸다-

 

진나라의 폭정 때문에 나라를 세운 한나라 역시 군현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그로부터 마지막 제국인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제국이란 시스템은 중국이란 거대한 제국을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자라나게 된다.

  

진나라가 군현제를 창시하자 한나라가 이를 따랐고, 수나라가 과거제를 창시하자 당나라가 이를 이었다. 또 송나라가 문관제를 창시하자 명나라가 이를 따랐고, 명나라가 각신제를 창시하자 청나라가 이를 이었다. 이는 제국의 제도가 끊임없이 성숙해가고 완벽해지는 과정이자, 중앙집권의 끊임없는 강화로 표현되었다.
-
제국을 말하다

 



 

!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자연스럽게 솟아난다. 청나라는 왜 망했을까? 이중톈 교수의 진단에 다르면 당시의 청나라는 역대 왕조와 비교해서 부패의 수준이 훨씬 떨어졌고, 나라의 성장기로 따져봐도 아직 중년기에 불과했다.

 

게다가 다른 사료를 찾아봐도 18세기 이전까지 청나라는 세계 어느나라보다 군사력과 문화력에서 압도적인 우의를 점하고 있었다. 따라서 1911년 신해혁명을 기점으로 맥없이 무너져버린 청나라의 운명은 여러모로 의문투성이다.

 

이중톈은 거기에 자신만의 의견을 제시한다. 바로 청나라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중국의 제국은 자살이란 방법을 통해 내부모순을 극복했다.

 

중국의 제국은 돈이 너무 많이 들지도 적게 들지도 않는 시스템이다. 중국의 역대 제국은 한번도 백성을 위한 적이 없다. 세금을 걷어들이면 그것은 황실과 종친 그리고 관료들이 흥청망청 쓰는 수준에서 끝났다. 풍성하게 남아도는 세금을 가지고 건설적인 일에 써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너무 세금이 적게 들어와도 문제지만, 당나라나 송나라 때처럼 너무 상업이 발달해도 나라가 맥없이 멸망하게 되었다.

 

이는 로마제국과 전혀 다른 점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로마는 기본적으로 상업을 중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화국을 세웠다. 비록 제국으로 가면서 황제 비스무리하게 생기긴 했지만, 원로원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시스템 때문에 굴러갈 수 있었다.

 

중국의 역대 제국 역시 유학을 기본으로 해서 관리들에게 일정 이하의 급료를 지불했다. 이는 천하가 천자의 것이고, 관리는 그저 성은에 감읍해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 명목상이고, 실제로는 왕실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궁궐을 높이 올리고, 사치를 부리면서 돈이 부족하다보니 만만한 관리의 월급을 줄인 것 뿐이다.

 

물론 이는 자연스럽게  관리들의 부패로 이어졌다. <제국을 말하다>를 보면 청렴하기로 이름난 임칙서 같은 인물도 하급관리들에게 일종의 뇌물을 받는 장면이 그려진다. 이는 워낙 오래된 관행이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제국의 초창기에는 백성들을 위해 힘쓰지만, 중기를 넘어서면 어떤 왕조든지 제국의 특성상 관리들이 백성들을 착취하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걸 이중톈은 자살이라고 부른다.

 

청나라의 경우는 이전까지 왕조들과 다른데, 외부에서 온 충격 때문이었다. 바로 서구열강이었다. 이중톈은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청나라에게 요구한 것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중국이 다른 나라와 평등하다라는 조항이었다고 본다. 여태까지 중국대륙에 진출한 나라들은 하나같이 무력을 통해 땅을 정복하고, 왕조를 바꾸고자 애썼다.

 

그러나 서구열강이 원한 것은 땅이 아니라 무역이었고, 무역을 하기 위해선 조약을 체결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청나라는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질 못했다.

 

변법이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은, 사람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이전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었다. 대대로 중농억상책을 펼친 중국으로선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사람간의 차별없이 민의를 대표하는 정당이 서로 정권을 차지기위해 정치대결을 하는 것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는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손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멸만흥한의 기치를 내건 자체가 아무리 인구의 90%를 한족이 차지한다고 해도, 소수까지 인정하는 민주적 사고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건 훈정을 내세우며 국민당 일당독재를 펼친 장개석 역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제국을 말하다>를 보고 있노라면, 중국의 제국에 대해 속시원하게 폐부를 찌르고 들어간다. 중국사는 워낙 길고 수많은 왕조가 흥망을 거듭했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제국을 말하다>를 읽음으로써 중국의 제국을 이해하고, 왜 중국이 오늘날까지 민주화되지 못하고 있는지 원인과 결과를 분석해낸다.

 

물론 이중톈 역시 중국인이라 오늘날 일당독재를 하고 있는 공산당과 현재에 대해선 날선 비판을 이전의 청나라 때처럼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제국을 말하다>를 읽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로마제국의 반대편에서 역대 최고의 국력을 자랑하는 중국의 제국 시스템이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했으며, 근본적인 모순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내 피와 땀으로 쓴 최고의 역작이자 감히 누구도 건들지 못한 제국의 제도의 폐부를 찌른 책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책을 읽는 내내 동감하게 되었다. 아마 책을 읽는다면 당신 역시 그러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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