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

朱雀 2011. 8. 2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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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 애니메이션 <세일러 문>에서 여주인공 세일러 문의 대사이자, <세바퀴>에서 임예진이 한동안 열심히 말했던 이 대사는 정의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을 보여주는 정확한 지표가 아닐까 싶다. 어린아이용 만화영화에서나 나오는 대사. 그게 우리사회의 인식이니까.

 

다 큰 어른이 정의에 대해서 말하면 혀를 쯧쯧 차며, ‘넌 아직도 그런 걸 믿냐?’라는 반응. 그런데 그런 정의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갑자기 지각변동을 하며 바뀐 일대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가 무려 100만부 이상 서점가에서 팔리면서 철학서적으론 드물게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것이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는 우리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면서 정의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두께도 두께지만 어려운 내용탓에 과연 이 책을 다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심지어 EBS에서 그의 책의 근간이 된 하버드대 수업장면이 방송되자, 11시라는 늦은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1%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고, 방송이 끝나자 무려 10만원이란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붙어서 비싼 정의를 새삼 알게 해주었다.

 

근데 새삼 정의에 대해 SBS에서 지난 21일과 282부작 스페셜로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를 방송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이 정의로운가?’를 묻는 방송이었다.

 

21일 내용에선 정의롭게 살고자 애쓴 내부고발자와 실험을 통해 정의 구현이 얼마나 우리사회에서 어려운 것인지 보여주었다. 28일 방송은 상당히 충격적으로 시작했다.

 

바로 전두환 전대통령을 두고 상반된 입장을 가진 인물들을 내세운 것이다. 5.18 유공자회와 전사모(전두환 전대통령을 사모하는 모임)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주었다. 전사모 회원은 쿠테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후한 평가를 들려주었다. 그가 권력을 잡지 않았으면 민주화는 더욱 늦어지고, 경제발전도 없었을 거라고. 반대로 유공자는 그걸 언어도단이라고 표현한다. 두 회원들 공방은 시골의사 박경철의 말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군대가 자국민을 향해서 총을 쏘면 비상식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정권을 잡고 정의사회구현을 말하면 더 비상식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비상식을 상식적으로 저질러왔기 때문에 상식과 비상식 자체가 혼란에 빠진 거잖아요.”

 

박경철 의사로 말대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비상식적일 들이 마치 상식처럼 자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군인이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고 이후 벌어진 일들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검찰조차 성공한 쿠테타는 쿠테타가 아니다라는 상식적으론 이해가 될 수 없는 말들이 버젓이 사회에 통용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자! 방송에선 단돈 천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기회를 잡은 정세주씨가 나온다. 그는 미국에세 헬스관련 앱을 만들어 전세계 관련 시장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가 말하지만 정세주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적도 없고, 소위 말하는 인맥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만 보고 그에게 투자한 투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세주씨가 만약 한국에서 창업했다면? 안타깝게도 그는 절대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방송에선 그와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한 벤처사업가를 보여준다. 전 얼라이언스시스템 대표 조성구 씨는 한때 은행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세계최고의 점유율을 자랑했다. 그는 승승장구했지만, 한 대기업의 잘못된 제안을 받아들였다가 현재는 빚더미에 앉아 있다.

 

‘300명이 그 소프트를 쓰게 해주면 나중에 대기업 전체에서 구매하겠다라는 단 한마디를 믿어다가 말이다. 그 대기업은 무제한으로 모은행 입찰에 참가했고, ‘사기혐의로 대기업을 고소한 조성구 사장은 현재 재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말 그대로 패가망신 했다.

 

이런 안타까운 예는 들자면 끝이 없다. 재래식 김을 만드는 푸드 김용호 대표는 현재 나날이 빚더미 위에 앉고 있다. 그의 김은 한땐 높은 품질 때문에 공장이 하루도 쉴날이 없었지만, 자신의 공장에선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내놓는 대기업 김들에 밀린 탓이다.

 

현재 국내 대기업은 통닭-피자를 비롯해서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소상공인이 돈을 벌던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얼마 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SSM(기업형 슈퍼마켓)은 국내대기업의 무절제한 욕망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것이다.

 

박정희 시대이후, 우리나라가 대기업 위주로 수출산업을 이끌어 나간 것은 일단 덩치가 큰 업체들이 이익을 내기 시작하면 그 혜택이 저절로 국민에게 이를 것이라 믿은 탓이었다. 이른바 그릇에 물이 차면 떨어진다는 낙수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근데 실제론 어떤가? 우리 사회는 고용없는 성장이 이루어진지 오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 국민의 살림은 팍팍하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개천에서 용날 수 있는교육마저, 이젠 치솟는 대학등록금과 사교육비 때문에 하위계층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그나마 가장 쉽게 계층이동이 가능한 교육마저 그 기회를 봉쇄당한 것이다. 교육도 안되고 정당한 경쟁도 되지 않으며, 심지어 개개인이 밥빌어 먹고 살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는 사회에서 과연 누가 살아갈 수 있을까?

 

이는 정의를 논하기 이전에,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회다. 이렇게 되면 힘없는 이들은 연대와 시위를 통해 정의를 물을 수 밖에 없다. 근데 요즘 사회는 그런 움직임마저 아예 봉쇄하고자 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남는 길은? 투쟁밖에는 남지 않는다. 아랍의 재스민 혁명처럼, 분노한 시민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과정에선 무수한 피가 거리에 쏟아지게 될 것이다. 그런 부자와 가난한 이 모두에게 엄청난 불행이 될 것이다. 그런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는 낮은 자들의 외침을 듣고 변화를 지속해가야 한다.

 

물론 기득권층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권력을 빼앗아오기 위해선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늘날 SNS를 통한 활발한 움직임은 약간의 희망을 준다. 심지어 안철수 교수는 집단지성을 들면서 희망을 이야기했다. 교육을 통해 계층이동이 가능해지고, 양극화가 줄어들고, 땀 흘린 만큼 보답이 돌아오는 상식적인 사회는 과연 우리 사회에서 언제쯤 가능할까?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내 나를 괴롭힌 질문이었다. 어쩌면 내 평생동안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드러나는 순간을 우리 모두는 끓어오르는 목마름으로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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