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시간을 건너뛴 주인공이 다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려지기 마련이다. <인현왕후의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300년 전 사람인 김붕도는 2012년 대한민국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제작진과 시청자 모두 알고 있다. 김붕도를 연기하는 지현우는 현대 사람이며, 그는 아닌 척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문제는 ‘얼마나 더 그럴 듯 하게 연기하느냐?’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인현왕후의 남자>는 합격점을 주어도 무방할 듯 싶다. 아니, 이전까지 국내에서 나왔던 드라마 가운데 가장 꼼꼼하게 살폈다. 5화의 마지막 장면은 김붕도가 최희진에게 전화를 걸면서 끝났다.
여기서 당연한 의문이 샘솟는다. ‘김붕도는 어떻게 전화를 걸 수 있었을까?’ 김붕도에게 최희진은 전화번호를 가르켜 준 적이 없다. 또한 조선시대 사람인 김붕도는 전화를 걸 돈도 카드도 없다. 결정적으로 21세기 물건인 전화기를 어떻게 조선시대 사람이 쓸 수 있는가?
일반적인 공중파라면 김붕도가 말한 대로 ‘3일간 전화기를 쓰기 위해 애썼다’라는 대사 한마디로 처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현왕후의 남자>는 달랐다! 6화에선 김붕도가 어떻게 전화를 걸 수 있었는지 꼼꼼하게 설명했다!
5화에서 김붕도는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상황에서 자객들의 습격을 받았다. 그 와중에 김붕도는 머리에 상처를 입었는데, 그것은 21세기에 떨어져도 계속 되었다. 김붕도는 제주도를 걷다가 우연히 관광지에서 한 외국인 관광객이 놓고 간 가방을 줍게 된다.
거기에는 지갑과 관광책자가 들어있었다. 김붕도는 3일간 그 책자를 보면서 현대의 문명을 익히게 된 것이었다! 우선 김붕도는 책자를 보고 약국을 찾아가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할 약을 산다. 아울러 버스를 보면서 노선을 연구하고, 서울로 올라갈 비행기와 전화를 거는 방법까지 연구하게 된다.
김붕도가 최희진의 전화번호를 알게 된 것은 지난번 도서관에 갔을 때, 최희진이 주차하면서 번호를 메모로 남긴 것을 보고 외운 것이었다! 이 얼마나 절묘한 디테일인가? 김붕도가 책자 하나만 가지고 3일간 제주도를 헤매면서 현대문명에 적응하는 모습은 그가 천재라는 사실과 더불어, 옛사람이 현대문명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매우 디테일하게 그려지면서 ‘사실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인현왕후의 남자>는 판타지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한 판타지는 시청자에게 외면받을 수 밖에 없다. 물론 너그러운 시청자는 300년 후로 건너온 조선시대 사람이 현대에 적응하는 과정이 상당 부분 빠져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수의 시청자들은 조선시대 사람이 현대의 물건을 손쉽게 쓴다면 몰입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왜? 도저히 믿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현왕후의 남자>는 매우 세밀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고 있다. 우의정 민암과 결판을 짓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려는 김붕도는 비행기를 타려고 하나, 신분증이 없어서 곤란했다. 이를 해결키 위해 최희진은 비슷한 체구의 친구에게서 신분증을 빌려서 제주도까지 내려와서 그를 챙겨서 티켓까지 일일이 끊어준다.
이런 설정은 별 것 아닌 걸로 볼 수 있지만, 최희진이 김붕도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신분증까지 구해서 김붕도가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은 시청자에게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얼마나 작가가 고심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이다. 아마 공중파였다면 그런 부분은 그냥 점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현왕후의 남자>는 이전까지 나온 판타지물들과 달리 최대한으로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그런 부분들은 상당 부분 효력을 발휘했다고 본다.
또한 이전까지 아무 의미 없이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드라마들과 달리, 원래 김붕도가 제주도로 위리안치 되어서 ‘제주도’라는 공간이 나올 수 밖에 없게끔 설정한 것은 탁월한 심미안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비행기 안에서 한동민이 우연히 타고 있어서, 이전에 김붕도를 최희진을 따라다니는 스토커로 오인했던 것을 쭈욱 이어서 비행기에서 경찰에 신고해서 그를 잡는 장면 역시 ‘인과관계’에 많은 주안점을 두었음을 새삼 실감케 했다.
병원과 달리 이번엔 꼼짝없이 경찰서로 넘어가게 된 김붕도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의 남자친구라고 밝히는 최희진의 모습은 두 사람의 관계가 점점 깊어질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이제까지 두 사람은 계속 만나면서 인연을 쌓아왔고, 4화에선 엘리베이터에서 키스까지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처지 때문에 ‘연인’이라고 말하기엔 어정쩡했다.
그러나 그런 선언을 함으로써 두 사람은 시공을 뛰어넘어서 연인이 되는 기막힌 인연이 되고 말았다. ‘스토커’가 단순히 웃음을 주기 위한 코드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최희진과 김붕도를 연결해주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될 줄은 몰랐다. 이전까지 시공을 초월한 드라마중에 이렇게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기고 복선을 넣는 드라마는 없었던 것 같다.
숙종시대엔 정치적 암투에 맞서 싸우는 투사로, 21세기엔 너무나 로맨틱한 선비로 활약하는 지현우와 무명배우에서 점점 인기 여배우로 발돋움하는 유인나의 연기는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울러 비록 한컷이긴 했지만, 5화에서 인현왕후를 연기하는 유인나의 모습은 예상외로 너무나 사극에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의 예상치 못한 화학작용과 대본과 연출력이 빛나는 <인현왕후의 남자>의 다음주 방송이 벌써부터 너무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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