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치앙마이 표류기

나는 왜 태국 치앙마이에 와 있는가?

朱雀 2013. 1.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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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하니 주변에서 몇 가지 반응을 보였었다. ‘가서 유명한 관광지들은 꼭 살펴봐라’ ‘돈이 많구나’ ‘부럽다’ 등등. 필자가 태국에 대해 환상을 품게 된 것은 겨우 몇년 전 일이다. 원래 태국이란 나라는 내 편견과 선입견 속에선 ‘그저 그런 동남아 국가’ 정도 였다.
 


그러다 우연히 태국이 물가도 싸고 사람도 착하고 많은 매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어렵게 어렵게 이번에 태국으로 떠나게 될 때도 몇몇 이들은 ‘방콕행’을 우선 추천했다. 방콕에 가서 관광을 며칠 정도 하고 치앙마이로 넘어가라는 조언이었다.



곰씹어볼만큼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며칠 고심 끝에 그냥 치앙마이 직행을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지칠대로 지친 내 심신 때문이었다. 조그마한 생활소음에도 예민하고, 주변 사람들이 별 뜻 없이 한 말인 줄 알면서도 마음의 상처를 입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경우가 최근 너무나 잦아졌다.
 


무엇보다 스스로 걱정을 사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걱정할 일이 없음에도 늘 걱정하고 있었다. ‘집안에 도둑이 들면 어쩌지? 가스를 안 끄고 나와서 사고가 터지면? 혹시 뭐라도 떨어지면...’등등 말도 안되는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태국 치앙마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도착하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을 보면서 내가 태국, 그중에서도 치앙마이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치앙마이에서 나는 숙소에서 지내다가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고 생각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러다가 이내 자고, 다시 점심 먹고 까페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를 반복하고 있다.



아마 하루에도 유명한 관광지를 두세군데 이상은 찍고 다니는 열혈 여행가에게 내 치앙마이 생활은 무료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혹은 돈이 넘쳐서 그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의 생활에 무척 만족한다.



한국에서의 삶은 나름 편하긴 했지만 역시 이것저것 신경쓸 일이 많았다. 블로거로서 만 4년 이상을 지내면서 스스로 내 정신의 곳간을 많이 빼먹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만약 볼 수만 있다면 필자의 내면은 황폐하다못해 바닥이 쩍쩍 갈라져 황무지 그 자체였으리라.





 

필자는 블로거 생활을 하면서 매우 운이 좋아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 연속 ‘티스토리 베스트 블로거’로 선정되었고, 덕분에 여기저기 초청을 받아서 취재를 간 적도 많고, 강의를 하거나 기고를 한 적도 꽤 된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게만 살아가다보니 내 자신을 별로 돌아보지 못했고, 하나둘씩 스트레스가 쌓여 이젠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이들이 육체를 혹사하면 걱정을 한다. 육체는 정직하다. 안색이 나빠보이거나, 몸 여기저기가 아파오고 심지어 드러눕게 되면서 신호를 보내온다. 그러나 우린 ‘내적인 혹사’에 대해선 이상하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분명히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가슴이 답답한 신호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건 아닐까? 정신 역시 정직한데, 우리 스스로가 나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닐까?
 


지난 만 4년 이상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물론 하루도 안 쉰건 아니다. 며칠동안 쉬기도 했고, 며칠 정도 여행을 다녀온 일도 시시때때로 있었다.



그러나 ‘충분히 쉬었다’라고 생각될 정도로 스스로에게 휴가를 준 적은 없었다. 물론 누군가가 필자에게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너 지금 포스팅하고 있잖아? 쉬는 것 맞어?’



옳은 지적이다. 완벽한 휴식이라면 포스팅도 하지 말고 제대로(?) 쉬어주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필자에겐 그런 ‘완벽한 휴식’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이곳에 왔어도 ‘뭔가 할 거리’는 필요하다. 안 그럼 너무 무료하니까.



누군가에게 그것은 관광명소를 다니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여기저기 사진 찍으며 전 세계 관광객들과 어울려 다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필자에겐 어떻게 보면 따분할 정도로 무료한 지금의 삶이 너무나 행복하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며, 읽고 싶을 때 읽고, 쓰고 싶을 때 쓰고 있다. 물론 약간의 외로움은 있다. 그리움도 있다. 고국의 친지와 친구들이 보고 싶고, 벌써부터 김치찌개와 순대국밥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다!




그러나 오래 있을 예정이 아니고 기껏해야 한달을 조금 넘어가는 여정이기에 그냥 넘기려고 한다. 나를 아는 이가 거의 없는 곳에서, 나를 숨막히게 하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 사라진 이곳에서 필자는 오랜만에 유유자적한 삶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힐링’이 대유행이다. 예전에 ‘웰빙’이 유행이었던 시절을 기억한다. ‘부처님도 웰빙족’이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요즘은 힐링을 위해서 이름난 명사들의 강의를 듣거나 체험을 위해 캠프에 가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런 모습이 필자에겐 ‘힐링을 팝니다’라는 모습으로 보인다. ‘힐링을 누구누구가 잘한대?’ ‘그래? 그럼 오늘은 그 사람한테 힐링 받으러 가자!’. 마치 자동판매기에 돈을 넣고 물건을 사는 것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힐링은 제일 잘 판매되는 핫아이템으로 보일 뿐이다. 고객들은 그 잇아이템을 사기 위해 우르르 몰려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나를 힐링할 수 있는 건 누구인가? 답은 늘 그렇지만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내가 내 자신에게 쉴 수 있는 휴식을 주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시간을 줘야만 하지 않을까?
 


필자는 스스로 힐링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곳에서 최대한 나를 둘러싼 인연을 끊고 모처럼 정말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내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 방법을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지 않고, 정확한 방법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필자 역시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방법이고, 아직 효과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신경이 쓰이게 되는 새로운 문제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나란 인간은 참...
 


그러나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6년간 고행을 한 것처럼. 사회에 치이고 인간관계에 상처받은 내 마음을 힐링하기 위해선 스스로 길을 찾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혜민스님과 김정운 교수처럼 유명한 이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곤 생각한다. 힌트를 얻을 수도 있고, 적어도 그 시간동안 위안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다. 남이다. 결코 나는 혜민스님이나 김정운 교수가 될 수 없고, 그들 역시 마찬가지다. 도움을 줄 수 있고 힌트를 줄 수 있지만, 나 자신에게 진정한 힐링을 줄 순 없다고 본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밖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짜증나는 직장생활, 꼬이디 꼬인 인간관계,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막막한 미래.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기대를 걸기엔  제약이 많고 (된다 해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어쩌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때쯤?- 그래서 사람들이 우선 찾는 게, 내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니까. 그래서 스트레스가 제일 많은 나라인 한국에서 힐링이 유행이라고 감히 혼자 분석해본다.



혜민스님 같이 대단한 분도 결국 인간이고, 그분 역시 고민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같은 범인보다는 훨씬 고차원적이겠지만. 잠시 가지고 있는 것을 놓아보자. 바쁘게 가던 길을 멈추고 쉬어보자.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보자. 지루할 정도로 여가시간을 주어보자. 그럼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내 자신의 평화가 보이지 않을까? 답을 찾는 건 철저하게 나 자신이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으니까. 라고 감히 용감하게 외쳐본다. 틀린다고 해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고 혼자 믿어본다. 내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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