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괴물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화이’

朱雀 2013. 10. 1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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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볼 테니.

 

철학자 니체가 말한 유명한 말이다. 영화 <화이>에 대해 이야기 함에 있어서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영화 <화이>는 얼핏 보면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많았던 킬러가 등장하는 느와르풍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현란한 액션과 핏빛 복수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런 외피들을 벗겨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영화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누구나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영화에 대해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점 미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화이>는 처음부터 화이가 괴물을 보면서 시작한다. 얼핏 보면 어린 시절 납치를 당한 기억 때문에 화이가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을 보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중반 이후 괴물이 되어가는 화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그것은 화이가 괴물이 되기 위한 자신에 대해 스스로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할 수도 있다.

 

냉혹한 리더 석태는 화이를 자신 못지 않게 키우기 위해 5명의 아버지의 기술들을 모조리 배우게 한다.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화이가 5명의 아버지들의 기술을 전수받는 장면들은 얼핏 보면 무술영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예쁘고 멋진 것만 봐도 모자랄 시기에 사람을 죽이고 상하게 하는 기술을 배운다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화이>는 끔찍한 영화다! 우선 사람을 죽이고 상하는 장면들이 정말 날 것 그대로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끔직한 것은 결국 화이가 자신의 아버지들을 죽이게 된다는 사실이다. 석태의 강요에 따라서 어느 철거구역에 들어온 화이는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한 남자를 총으로 쏘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그가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5명의 아버지들에게 총을 겨누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화이>는 단순히 복수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부에 이르면 그려지는 것처럼(석태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과거사에서 화이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몹시 헷갈리게 된다).

 

석태의 화이에 대한 집착은 친아버지를 능가하기 때문에 더더욱 의심스럽다. 어쩌면 석태가 화이를 납치한 것은 단순히 몸값을 받거나,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친아들을 찾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다.

 

<화이>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 한다. 비록 키운 정이라지만 5명의 아버지들을 화이는 모조리 죽이게 된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대상은 철저히 어머니로만 한정된다.

 

영화에서 화이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친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 한다. 그러나 결국 석태의 손에 잃게 되고, 결국엔 자신을 키워준 또 다른 어머니를 구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해석의 여지가 많을 것이라 여겨진다. 아버지와 아들은 경쟁의 관계다. 남자로서 특히 그러하다! 아들이 성장해서 남자가 되기 위해선 아버지를 이겨야 한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이런 말들을 제겨두고 보면, <화이>는 슬픈 영화이기도 하다. 결국 5명의 아버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화이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업보로 인해 아들에게 죽음을 당하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해야 했다.

 

그들의 삐뚤어진 사랑의 방식 때문이었다. 특히 석태는 아버지로서 자신처럼 괴물이 보이는 화이의 병을 고쳐주고 싶어했는데, 그 방식이 너무나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록 자신을 납치했지만 여태까지 키워준 5명의 아버지들을 처단하는 화이의 운명 역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화이>는 괴물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영화속 그려지는 괴물의 모습은 나무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한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그런데 <화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범죄자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없는 인물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석태와 화이가 괴물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엔 평범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자신들의 인생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신분을 위장하고 살아가는 그들이 굳이 다른 것도 아니고 화훼관련 일을 한다는 것은 뿌리를 가질 수 없는 그들의 삶에 대한 최고의 상징이자 은유라고 여겨진다.

 

<화이>는 얼핏 보면 화이와 5명의 아버지들의 관한 영화같다. 그러나 영화는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남겨놓았다. 돈만 받으면 뭐든 하는 5명의 아버지와 그들에게 철거민을 죽여라라고 시키는 기업의 행태는 사실 괴물이라고 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허나 오늘날 황금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다스리는 세상에선 이보다 더할 일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현실은 영화보다 더 비극일지도-

 

회장의 명에 따라 화이의 친부모를 죽이려는 실장의 모습이나, 그걸 지시하는 회장은 결국 현 사회에 대해 통렬한 비판이 아닐까?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화이가 회장을 저격하는 장면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괴물이 이 사회의 괴물을 처단했기 때문이다.

 

<화이>는 이야기상으로만 보면 얼개가 확실하게 맞지 않는 구석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약점에 눈을 돌리지 말고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구석들이 많다.

 

물론 영화는 잔인한 장면이 많고 여진구와 김윤석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 때문에 한눈 팔기 쉽지만. 작게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과 광기에 대해, 크게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괴물에 대한 풍자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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