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민중의 희생은 당연한 것인가? ‘육룡이 나르샤’

朱雀 2015. 11. 4. 07:00
728x90
반응형

개인적으로 ‘육룡이 나르샤’에 많은 불만이 있다. 고증이 철저하지 못한 것부터 시작해서 ‘사극’으로 본다면 약점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드라마’로 놓고 본다면? 특히나 그중에서도 민초들의 희생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은 이전까지 드라마에 비해서 탁월한 편이라고 여겨진다.



‘육룡이 나르샤’는 1화부터 권력가들에 의해 희생당하는 민초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인겸이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 새끼돼지들에게 인간의 젖을 물리는 장면은 너무나 끔찍했다. 거기에 더해 엄마의 젖을 먹지 못한 아기가 죽는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서군의 주민들이 너무나 높은 세금 때문에 몰래 황무지를 개간한 이야기는 어땠는까? 결국 홍인방의 가노들에 의해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3년간 노력한 첫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10화에선 땅새가 정도전에게 따진다. 당신의 평정지계에 따라 백윤을 죽였지만 고려는 더더욱 썩어문드러졌고, 그 와중에 힘없는 백성들만 죽어나간다고. 이에 정도전을 대신해서 이방원이 말하는 과정에서 ‘희생은 필연’이란 식으로 말한다.



이건 권력가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우리는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라는 말을 자주 듣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은 모두 소중한 것이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보다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아무리 드높은 이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과연 옳은 이상일까? 10화에선 정도전이 왜 동굴에서 자신의 대계를 꾸미는지 이유가 나온다. 그곳은 원래 홍건적이 고려를 침입했을 당시, 갈곳없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그가 임시로 꾸민 곳이었다.







잠시 바깥의 사정을 살피기 위해 나왔던 그는 스승이 누명을 쓰는 현장에서 관군에게 잡히고, 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옥에서 나온 그를 만나게 된다. 정도전이 그 동굴에서 대계를 꾸민 것은 그런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며, 누구보다 민초들의 고통을 잊지 않고, 그들이 웃으며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은 대단한 인물이다! 그는 분명히 자신만의 이상이 있으나,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현실적인 참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사제를 죽인 홍인방에게 기꺼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고문했던 길태미에게도 고개를 숙일 줄 안다.



그러나 자신을 속인 이방원에겐 그가 한 행동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준엄하게 꾸짖을 정도로 중요한 것을 잊지 않고 있다. 흔히 권력을 잡기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그 사람은 기존의 권력가들과 비슷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런 면에서 정도전은 몹시나 독특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썩은 고려를 끝장내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원수와도 손을 잡을 줄 아는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권력자들 때문에 고통받는 민초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다.



뱀의 지혜를 가졌으면서도 사자와 같이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는 인물. 그런 정도전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울림이 매우 크다고 여겨진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