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예능과 버라이어티, 이대로 좋은 걸까?

朱雀 2009. 10.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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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방송을 시작한 <청춘불패>를 보면서 “과연 이래도 될까?”라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7명의 걸그룹 멤버들을 모아 ‘성장’시킨다는 미명하에,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힘든 시골체험을 하게 만들었다. 소녀들은 그 과정에서 핸드폰을 압수당하고 닭똥을 치우고, 콩을 베고, 땅을 파고, 가마솥을 닦았다.

예쁜 외모와 화려한 무대매너로 팬들을 사로잡는 그녀들은 시작부터 자고 있는 숙소에 쳐들어온 엠씨들에 의해 원치 않는 생얼을 억지로 공개당하고,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한 후기를 묻는 등의 영상이 여과없이 방송되어 못내 씁쓸했다.

생각해보면 <청춘불패>의 포맷은 물론이요, 7명의 인기연예인을 불러 고생을 시킨다는 점에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와 다를 바가 없다. 한편, 이번주 ‘패떳’을 보면 이효리, 대성, 김수로, 윤종신이 새벽에 갈치잡이 배를 타고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고기잡이를 하며 엄청난 고생을 했다. 그리고도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 짓기 복불복을 해야했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육체적으로 연예인들을 혹사시킨다면, 예능에선 연예인들의 내밀한 사생활 파기에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홍보’나 자신을 노출시키기 위해서라도 이제 연예인들은 스스로의 사생활을 거침없이 까발라내야 한다.

<강심장> 3화에서 서유정과 브라이언은 자신들이 사귄 전 연예인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고, 나르샤는 성형사실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서브엠씨라 할 수 있는 붐은 연예인들의 이른바 굴욕사진을 가지고 나와 웃음을 줬다.

오늘날 예능 프로그램은 철저한 까발리기와 연일 수위 센 발언들로 시청율을 끌기에 바쁘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프로들은 연예들을 야생과도 같은 생활속으로 몰아넣고 마치 동물을 실험하는 카메라처럼 그들의 당황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찍어내기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전 이성미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능이 미쳐가고 있다. 이런 수위의 발언을 해도 되는 건가 모르겠다”란 식의 발언을 했다. 7년 전의 방송과 비교했을 때 오늘날 예능과 버라이어티의 수위는 상당하다. 성형고백은 물론이요, 사귄 연예인과 망한 사업 이야기등 누구나 감추고 싶어하는 내밀한 이야기를 까발리고, 생고생을 하는 연예인들을 보고 깔깔대며 시청자들은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어딘가 가학적이다. 예전, 그러니까 한 7-8년전에 일본 예능 프로를 보며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었다. 게스트를 불러놓고 함부로 대하고,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괴롭히는 모습을 본 탓이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 방송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전까진 그저 약간의 웃음을 유발하던 각종 벌칙들은 이제 의자에서 해당 연예인을 날려 수영장에 처박게 하고, 밥을 뺐고, 추운 겨울에 밖에서 자게 할 정도로 수위가 높아졌다.

20대 팔팔한 시기에 군에서나 겪었던 혹서체험을 이제 연예인들은 ‘예능’이란 이름으로 수시로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화가 나고 짜증이 날 텐데도, 카메라가 그들의 얼굴을 계속 주시하고 있기에 짜증한번 낼 수조차 없다.

예쁘고 화려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걸그룹 멤버들을 모아 시골로 보내 그야말로 생고생을 시킨 <청춘불패>. 그동안 남성 연예인들을 주로 시키던 것에서 벗어나 여성 멤버들만 모아 고생을 시킨다는 점에서 수위가 높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오늘날의 세상은 정말 눈부신 문명을 이뤘다. 이제 컴퓨터도 부족해 아이팟과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즐길 수 있게 되어, 우린 빛의 속도로 서로와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게 되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우리는 역으로 느긋함을 잊어버리고 조급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개그는 즉물적이 되어 버렸다. 바로 그 순간, 몇 초내로 승부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바로 채널을 돌려버리고, 해당 프로를 외면한다. 방송사들은 그런 사정 때문에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다. 우린 연예들이 당황하고 힘들어하고 내밀한 속사정을 들으며 낄낄대고 있다. 물론 그런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방송사도 문제는 있다. 그러나 우리 역시 뭔가 병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청춘불패>는 어찌보면 우리의 가학성이 끝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동안 <패떳>등에 여성 게스트들이 고생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 남성들이 있어서 그들이 어느 정도 커버가 되었다. 그러나 <청춘불패>는 아직 20살도 안된 소녀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녀들을 화려한 무대에서 끌어내어 시골로 처박아 놓고, 민낯을 공개시키고 힘든 농촌일을 시키면서 우린 어쩌면 ‘니네들도 시골에 가면 우리랑 별반 다를 것 없어. 어때 고생해보니 연예인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빛보다 빠른 세상에 살다보니 오히려 상상력은 제약되고, 엄청난 정보량에 압도되어 더욱 수동적으로 되다보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점점 우리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당하는 모습을 즐기게 된 건 아닐까? 방송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잘 반영하는 거울 중의 하나라 여겨진다.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다면 뭔가 우리 스스로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돌아봐야 하는 건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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