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선우선이 격하게 불쌍해진 이유

朱雀 2010. 1.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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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얼마나 기다렸던가? <클스>가 방송되기를. 연말특집이니 뭐니해서 3주만에 보는 것 같다. 지난 8화에서 한예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눈앞에 나타난 선우선에게 키스를 하는 고수를 보면서 정말 ‘나쁜 남자’이자 ‘불쌍한 남자’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두 번씩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한 여자에게 빼앗기는 한예슬의 처지가 너무 불쌍하고 가여웠다. 그러나 9화를 보면서 선우선이 무척 격하게 불쌍하게 느껴졌다.

선우선의 첫 등장은 범서그룹의 회장인 자신의 아버지를 고수와 만나게 하면서 부터였다. 박태준과 깨진 이후 선우선은 아버지와 담판을 했다. 만약 이번에도 퇴짜를 놓으면 미국으로 이민가서 다신 한국에 돌아오진 않고 혼자서 살겠노라고.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머뜩치 않은 표정으로 고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맹랑하게도 고수는 그에게 ‘회장님이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닙니다. 그저 상사와 부하관계이며 걱정하는 그런 관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클라이언트와 약속이 있어서 이만’이란 제 말만 하고 나가버린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런 고수의 반응을 회장이 무척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이다! 밖으로 나간 고수를 붙잡고 선우선은 하소연한다. 더 이상 이전에 한 키스가 실수라고 하지 말라고. 혹시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너의 마음을 한자락 잡을 수 있냐고. 고수는 냉정하게 대답한다. 아니라고.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고수는 자신 예쁘지 않고 매력 없는 여자라고. 그렇지만 남자로서 야망은 없느냐고 하는 말에, 처음 만났다면 당신을 좋아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건 오히려 더 잔인한 말이다. 상대방에게 여지를 남겨주지 않으니까.

고수는 그런 면에서 매우 무섭고 나쁜 남자다. 오히려 무턱대고 흥분하거나 화를 내는 대상은 공략(?)하기가 쉽다. 그러나 고수처럼 자신의 진심을 그대로 터놓으면서 뒤돌아보지 않는 철두철미한 인간에겐 해법이란 존재할 수 없다.


선우선의 두 번째 등장은 고수와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에서 벌어진다. 우연히 한예슬-박태준 커플과 만나게 된 두 커플은 각자 남자 파트너를 챙긴다. 한예슬은 일부러 자신이 사준 넥타이를 메주고, 선우선은 일부러 고수의 얼굴을 손으로 만지며 애정표현을 한다.

고수는 일단 앞에선 장단을 맞춰주고, 범서건설이 로비로 박태준에게 갈 공사를 딴 사실을 모른 체 선우선을 옹호하고 보호해준다. 고수는 한예슬 커플이 나간다음, 사실인지 물어본다. 선우선은 ‘아마도’라고 대답해 사실임을 확인시켜준다.

그 다음부터 선우선의 대사가 명대사다. 선우선은 자신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사랑은 자기최면 같은 거라고. 그래서 자신은 고수의 사랑도 믿지 않는다고. 자신이 노력하면 언젠가 자신에게 올거라고 말이다. 허나 그녀는 고수를 알지 못했다.

오로지 평생 한 사람만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체, 다른 이는 쳐다보지도 않는 지고지순한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선우선은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은 인물이었다. 박태준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살까지 시도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돈을 받고 자신을 포기한 사실을 알고 치를 떨기도 했다.

겨우 간신히 박태준에 대한 마음을 접고, 새로운 사랑의 상대로 고수를 점찍게 되었는데. 하필 그 사람은 한예슬 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그는 자신의 안위등엔 상관없이 오직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한다. 범서그룹의 회장실까지 쳐들어가, 박태준의 건설건을 돌려주지 않으면, 언론사에 비리사실을 뿌리겠다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제 내사과에 몰려 억울한 누명을 쓸 판이다. 그참에 앞뒤사정 모르고 한예슬은 비리를 일삼는 너희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고수의 집문을 때려부술 기세를 부리고, 하필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노력하면 언젠가 자신을 돌아봐줄 거라 믿은 사람인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한 여인의 행복을 위해 맹목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을. 게다가 하필이면 그 여자는 자신의 전애인이 사랑하고, 지금 사랑하는 인물까지 사랑하는 대상이다.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가진 것도 없는 자신에 비해 조건이 떨어진다면 무척 많이 떨어지는 인물이다(사회통념상). 사랑 빼놓고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사랑 외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이에게 자신이 제일 갖고 싶어하는 사랑이 머물때의 기분은 어떨까?


10화 예고편에도 나오지만, 고수의 진심을 알게 된 한예슬은 그를 풀어내기 위해 선우선에게 매달린다. 선우선은 눈물을 흘리며 박태준과 결혼해버리라고 조건을 내걸면서 그녀에게 화를 낸다.

<클스>에서 선우선의 역할은 매우 매력적이다. 그녀는 재벌 2세지만 매우 소탈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인물이다. 또한 말에 진심을 담기 때문에 털털하면서도 나름 여성적인 매력도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유일하게 원하는 사랑을 갖지 못하고, 그 사랑들을 한 여자에게만 자꾸 빼앗겨 질투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무척이나 애처롭게 보였다.

선우선이 한예슬보다 <클스>에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서 나름 정직하게 사랑을 원하고 그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식 없는 그녀의 모습 때문이리라. 그러면서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토로해내는 그녀는 솔직해서 쉽게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반면 한예슬은 등에 지닌 슬픔과 고통이 너무 커서 아르고, 어딘가 모르게 외면하고 싶은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건 연기력의 문제라기 보단, <클스>의 인물 설정상 한예슬이 연기하는 한지완이 가진 말도 안되는 비극적 설정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어찌되었건 새해에도 <내조의 여왕>을 잊고 선우선이 연기하는 재벌 2세 이우정 이사는 <클스>의 시청자들에게 매우 큰 지지를 계속해서 받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너무나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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