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왜 문근영은 고통을 내색하지 않을까?

朱雀 2010. 4. 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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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 3화를 보며 내내 문근영의 연기에 가슴아파했다. 이웃블로거 캐치님이 지적한 것처럼 그녀는 들고양이에 가깝다. 예전에 재밌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길에 버려진 고양이가 아주 어렸을 때 데려다 키우면, 다른 집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애교 많고 행복하게 잘 자란다고 한다. 그러나 일정 이상 성장한 고양이를 집에 데려오면 아무리 사랑과 보살핌으로 보살펴도 주인에 대한 경계를 풀지 못한다고 한다.


참고글) 이웃 블로거 캐치님의 포스팅

결국 언니는 신데렐라를 죽일 것이다.



언제 자신을 버릴지,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란다. 하여 그런 고양이들은 보통 행동방식을 둘중에 하나로 정한다고 한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더없이 주인에게 애교를 떨면서 버려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거나. 아니면 아예 주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군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대부분 바꾸기 어렵다고 한다.

 

바로 ‘마음의 문제’이다. <신데렐라 언니>에 등장하는 문근영도 마찬지다! 문근영은 어머니 이미숙을 따라 여러 남자의 집을 전전긍긍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이미숙을 결국 돈 몇푼에 부잣집 김갑수에게 넘긴 아저씨처럼, 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여자에게 손찌검을 할 정도로 형편없는 인간들 뿐이었다.

하여 문근영은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 항상 누군가에게 눈치만 보고, 자신이 상처받지 않도록 가시를 뾰족하게 세울 뿐이었다. 그녀가 풀숲을 걷다가 넘어지는 장면은 처음엔 코믹했다.

그러나 그녀는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한번도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조차 짓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작품의 장르가 ‘호러’인지 잠시 고민할 정도였다.

아파하지 않는 문근영을 향해 천정명이 놀라서 뭐라고 하자, 그녀는 소리친다. “아파! 안 아플리 있어? 근데 그게 뭐? 아픈게 뭐 어떻다구?”라고. 극중 문근영은 분명히 아픔을 느끼고 있다. 고통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에 가서 상처에 소독약을 (말 그대로) 들이 붇고 꿰메는 대도 표정하나 찡그리지 않는다.

 

이 정도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운장의 일화가 떠오를 지경이다. 바로 화타가 팔에 퍼진 독기를 빼기 위해, 수술칼로 뼈까지 도려냈는데 오히려 미소까지 지었다는 그 일화말이다. 물론 문근영의 상처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여성이라면 이 정도라면 비명을 지르거나, 최소한 표정이라도 구겼어야 정상이다. 허나 문근영은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는 천정명이 더 괴로워할 정도로 자신의 상처를 담담히 지켜볼 뿐이었다.

왜 그럴까? 그녀는 지난 세월 동안 이미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어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쫓고 쫓기는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지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하여 그녀는 이제 육신의 아픔따위는 별로 크게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싸우고 먹고 화내는 것에 익숙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남들이 꾸는 그녀에겐 사치에 불과하며, 행복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여 그녀는 서우가 미운 것이다. 딱히 자신에게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이전까지 주위 사람들과 다르게 항상 행복함에 젖어있고, 모두가 소중히 여기고, 자신은 단 한번도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말이다.

그러나 그런 문근영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바로 사랑이다. 문근영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천정명을 기다리다 밤을 세고, 돌아온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속으로 되뇌이며 어쩔 줄 몰라한다. 그가 ‘배고프다’고 하자, 기꺼이 한밤중에 밥상을 차린다.

친어머니조차 오직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상처 따위는 외면한지 오래된 삶속에서 자신의 봐주고, 아플까봐 치료해주고,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그를 보면서 생애처음으로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느끼게 된다. 3화에서 문근영의 상처가 나은 것은 단순히 생겼던 상처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천정명으로 인해 문근영이 마음의 상처까지 아물었다는 비유적인 상징이다.

 

천정명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에 대해 되뇌이고,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혼자 공부하며 환청을 듣는 그녀는 이제 이전과 다른 사람을 살게 될 것이다. 서툰 탓에 마음을 잘 표현하진 못하겠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을 살게 될 것이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가슴뛰는 삶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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