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동화는 끝나지 않았다! ‘신데렐라 언니’

朱雀 2010. 6. 3. 07:00
728x90
반응형



 

이제 한회를 남겨놓은 <신데렐라 언니>가 역시나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기훈-은조 커플의 급작스런 러브라인 전개와 더불어, 홍주가의 몰락과 송강숙의 귀환 등등. 우리가 좋아하는 인과관계를 고려하면 전혀 ‘말이 안된다’라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모두가 인정하겠지만 구대성의 죽음 이후 <신데렐라 언니>는 일반적인 전개방식에서 벗어나 버렸다. 음모의 중심인 홍주가는 결국 전본부장이 비리를 폭로하면서 허무할 정도로 무참하게 무너져 버렸다.

그렇다면 왜 <신데렐라 언니>는 1회를 남겨놓고, 갑자기 ‘동화’를 들먹이는 것일까? 애초에 동화란 무엇인가? 동화란 아직 세상에 대해 모르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을 알리고, 아이가 악을 미워하고 선을 가까이 하도록 권장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교훈’과 ‘지혜’가 첨가되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동화의 목적은 착하고 바른 인간이 되는 것을 지양한다.

 

허나 인생은 동화처럼 간단하지 않다. 선과악은 미묘하게 한덩어리로 뭉쳐서 있어 나눌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악인에 가까운 인간이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의 뼈대를 빌려, 현대판 동화로 비틀어 보여주는 듯 했다. 계모와 심술궂은 언니를 등장시키고, 한없이 착한 구대성과 구은조를 등장시킨 것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신데렐라 언니>의 이야기는 진행될수록, ‘동화’와 거리가 멀어졌다. 홍기훈은 동화 속 왕자가 아니라, 서자 왕자로서 삐뚤어진 나약한 인간이었다. 효선은 끝까지 은조를 질투하고 미워했으며, 은조는 가슴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전혀 끄집어내지 못했다.

 

 

죽은 구대성이 아들 준수앞에 나타나 함께 놀아주고,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한 부분이야말로 <신데렐라 언니>의 ‘동화성’을 최대로 보여준 예다.

그런데 막상 결말이 가까워지자 <신데렐라 언니>는 다시 한번 모든 것을 전복시켜 버렸다. 암에 걸린 홍주가의 전본부장은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홍주가의 비리를 까발려 위기에 처한 대성참도가를 살려냈다. 덕분에 홍주가에 맞서기 위해 애쓴 은조-효선 자매와 기훈의 노력이 헛되게 보일 지경이다.

 죽어도 홍주가를 놓지 못할 것 같던 홍주가의 회장은 기훈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눈물을 보이고, 기훈을 인정하지 않던 기정은 ‘잘했다’며 쿨한 모습을 보여준다.

<신데렐라 언니>는 결말을 앞둔 상황에서 ‘동화’로 회귀했다. 계모 송강숙은 동화처럼 완전히 선한 인물은 아니지만 개심했다. 효선은 잃었던 어머니를 되찾았다. 14살부터 오직 은조만을 사랑해온 정우는 프로포즈를 했다가 차이고, 은조는 기훈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고 기훈과 키스를 하면서 끝맺었다.

 

<신데렐라 언니>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은 퍽퍽하다. 어린 시절 믿었던 꿈과 희망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고,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잊고 지내고 살게 되었다.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를 단순히 현대적으로 재해석 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린시절 읽고 지낸 동화를 현대적으로 되살려내려 한 게 아닌가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가장 비관적인 상황에서 은조-효선 자매와 기훈은 포기하지 않고 대성참도가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노력이 아니라, 다른 이의 도움으로 상황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비록 사랑을 거절당하긴 했지만, 기훈을 향한 효선의 사랑과 은조를 향한 정우의 사랑은 헛된 것도 공허한 것도 아니다. 기훈과 은조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지만 그들에게 행복한 미래가 열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끔찍한 삶이 기다릴수도 있다. 그러나 내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함께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의미. 원나잇 스탠드와 혼전동거가 이젠 일상사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오직 한 사람만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사랑하는 삶은 이미 그 자체로 ‘동화’에 가깝다.

그러나 어딘가에는 한없이 사람을 믿고 베푸는 구대성 같은 이가, 계모의 부정을 용서하고 은조와 동생 준수를 받아들이는 효선과 같은 이가, 계부의 한없는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은조가, 비록 한때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그 실수를 되돌리기 위해 한없이 애쓰는 기훈 같은 이들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것이 <신데렐라 언니>가 동화적인 결말로 회귀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