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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 전투’는 원자폭탄을 이끌어냈다?! ‘뉴전사’

朱雀 2020. 12. 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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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멘터리 전쟁과 사람' 17회 이미지캡처

‘뉴스멘터리 전쟁과 사람’ 17회에선 이오지마 전투에 대해 다뤘다. 이오지마는 사람이 한 시간 내로 걸어갈 수 있는 자그마한 섬에 불과했지만, 일본열도를 폭격하기 위한 중간 기착지이자,미군이 일본의 영토 최전선을 함락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미군과 일본 모두 치열한 준비를 했다. 무려 800여 척의 함대와 해군까지 약 25만 명의 병력을 준비했다. 이에 맞서는 일본군은 섬에 지하기지를 마련했는데, 미로처럼 연결해서 단단히 준비했다. 지하 7층 규모에 무려 3~5킬로미터에 달하는 규모였다.

 

당연히 군을 동원할 수 없어서,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을 동원했고, 이는 우리에겐 끔찍한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1945219일 상륙 첫날 미군은 사상자만 3천 명이 발생했고, 2일차와 3일 차에도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은 미군의 포격에도 일본군의 방어선은 무너지지 않았다.

 

4일차에 미 해병대 28연대가 스리바치산 정상을 점령하면서 그 유명한 깃발이 휘날리는 사진이 찍히게 된다. 스리바치산은 중요한 거점이긴 했지만, 여전히 섬 북부에 거점들이 더 있었다. 5일차에 총 32대의 셔먼 전차가 파괴되고, 6,800여명이 넘는 미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해병대 전투는 326일에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월에 철수하게 된다. 점령된 이오지마 섬은 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 무려 B-29 폭격기 2,251대가 비상착륙하게 된다.

'뉴스멘터리 전쟁과 사람' 17회 이미지캡처

미군은 이오지마섬에서 엄청난 출혈로 인해, 원자폭탄 투하를 고민하게 되고, 우리가 아는 대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하게 된다. 이오지마 전투에서 일본군은 미군을 이길 수 없단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최대한 피해를 줘서, 이후 협상에서 유리하게 활용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전쟁은 비극을 낳는다. 이오지마 전투에서 수많은 미군들이 목숨을 잃었다. 최소한 일본군도 자신의 나라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은 남의 나라에서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우리가 다신 이런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선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바치는 거듭된 일본 총리들의 행태는 그들이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지 않았고,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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